[한겨레S] 김수헌의 투자톡
파두 사태
유니콘 주목받은 기술특례 ‘파두’
올 8월 상장 뒤 시총 2조원까지
2분기 매출 5900만원으로 드러나
신고서·설명회, 예견된 부진 누락
지난 8월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사옥에서 열린 ㈜파두의 코스닥 상장 기념식 모습. 한국거래소 제공
지난 2월 코넥스(초기 중소·벤처기업 주식거래 시장) 상장사 틸론은 코스닥으로 이전상장하기 위해 금융감독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공시했다. 신고서에는 회사의 사업 구조와 계획, 미래 추정 실적, 발행하는 공모 신주의 규모와 가치평가 방법, 회사가 안고 있는 각종 위험요소 등이 담긴다. 클라우드 전문기업인 틸론의 신고서 내용이 알려지자마자 증권시장에서는 매출 추정치의 타당성 등 기업가치 과대평가 논란이 일었다. 금감원은 회사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자본시장법 122조 1항에 따르면 증권신고서에 중요한 사항이 거짓 기재 또는 누락되거나 표시된 내용이 투자자의 합리적 투자 판단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을 경우 금융당국은 회사에 정정신고서 제출을 명령할 수 있다. 이후 금감원은 틸론에 두차례나 더 추가 정정을 지시했다. 7월 중순에는 정정 요구를 하는 이유를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틸론이 다른 회사와의 소송에서 패해 재무구조 악화가 예상된다며, 이와 관련한 손실 추정액을 더 구체적으로 기재할 것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당시 금감원은 보도참고자료에서 “투자자가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 등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투자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조치”라며 정정 요구의 배경을 설명했다. 기업이 증권시장에 상장하거나, 상장기업이 신주나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투자자 보호가 가장 큰 이유다. 틸론이 소송 패소로 자기자본의 몇 배에 해당하는 손실을 부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은 투자자가 이 회사의 신주 청약 여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다.
최근 자본시장에는 ‘파두 사태’라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다. 반도체 회사 파두는 진작부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으로 주목받았고 올해 8월7일 상장가치 1조5천억원으로 코스닥에 입성했다. 상장 9거래일 만에 주가가 4만1900원(공모가 3만1천원)까지 치솟으며 시가총액이 2조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잘나가던 회사는 지난 9일 하한가를 맞았다. 다음날도 주가가 22%나 빠지며 시장에 충격을 던졌다. 놀라운 것은 주가 하락을 불러온 원인이었다. 이날 파두는 3분기 재무제표 등이 담긴 사업보고서를 공시했는데 매출액이 3억2천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들을 더욱 당황하게 한 것은 2분기 실적이었다. 매출액이 5900만원으로, 시장에서는 사실상 ‘제로’(0)라는 평가가 나왔다. 파두는 코스닥 기술특례 상장기업이다. 기술력이 뛰어나거나 성장성이 큰 것으로 인정받을 경우 적자 기업이어도 최소한의 재무요건(자기자본 10억원 이상 또는 시가총액 평가액 90억원 이상)만 충족하면 상장심사를 받을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파두가 기술특례기업이라 당장의 실적을 기대하고 투자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실적이 나쁘다고 하여 투자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반응은 파두 사태의 본질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당신이 과수원에서 다음달에 사과 10상자를 구매하기로 계약하고 선금을 지불했다고 해보자. 과수원 주인은 올해 사과 작황이 좋아 품질이 양호한 사과를 수확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데 당신이 받아본 사과는 색깔이 불량하고 병충해 흔적이 있는 기대 이하의 품질이었다. 알고 보니 계약 당시에 이미 과수원에 병충해가 심각하게 번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과수원 주인은 “병충해가 일시적이라고 판단했고, 확산세가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이 해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겠는가. 과수원 주인이 정상적인 거래를 했다고 볼 수 있을까. 투자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파두의 실적이 고꾸라졌기 때문이 아니다. 회사가 상장 관련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지난 6월30일이다. 이때쯤이면 2분기(4~6월) 매출 상황을 충분히 알 수 있다. 파두는 거래처의 품질 테스트와 인증 절차를 거쳐 납품계약을 하고, 발주에 따라 납품을 이어가는 이른바 수주 비즈니스를 하는 회사다. 2분기 매출이 ‘0’에 가깝다는 건 2분기가 끝나야 알 수 있는 게 아니다. 더구나 파두는 대형 거래처 한곳에 대한 매출 비중이 70%에 이른다. 상황 파악이 더욱 용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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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회사는 올해 7월 말 기관투자자와 일반투자자 청약을 앞두고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이때 투자자들에게 매출 부진 상황을 알렸어야 했다. 매출 확정치를 밝혀야 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재 시장 상황이 악화하고 있어 회사가 애초 추정했던 분기 매출 전망과 실제 달성치 간에 큰 괴리가 발생했고, 연간으로 괴리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명확하게 시장에 제시해야 마땅했다. 이것은 회사가 투자자 보호를 위해 내놓았어야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회사가 그 생각을 못 했다면 상장 주관 증권사라도 조언을 해야 했다. 파두는 7월에 정정신고서를 한차례 제출했다. 그러나 2분기 매출과 발주 취소 상황, 악화하는 시장에 대한 내용을 담지 않았다. “회사 사업은 안정적인 수주 현황을 유지하고 있어 영업활동이 악화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매출액의 계속적인 증가와 수익성 개선도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을 정정신고서에서 그대로 유지했다. 이 회사의 사업 성과는 반도체 경기, 특히 낸드플래시메모리의 업황과 직결돼 있다. 글로벌 빅테크 업체들의 데이터센터 투자와도 맞물려 있다. 반도체 경기는 내년부터 한층 좋아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대세다. 파두에 대한 거래처의 발주는 올해 4분기부터 나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3분기 보고서 공개 뒤 급락한 주가는 이후 반등세를 보이긴 한다. 주가가 회복 흐름을 타고 있다고 해서, 상장 과정에서 드러난 문제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미 ‘사기 상장’ ‘뻥튀기 상장’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파두 투자자 가운데 일부는 회사 및 상장주관 증권사들을 상대로 증권 집단소송에 나설 조짐이다. 자본시장법 125조에 따르면 증권신고서나 투자설명서에서 중요 사항을 거짓 기재 또는 기재 누락해 투자자가 손해를 입은 경우 회사와 주관 증권사는 배상해야 한다. 집단소송을 준비 중인 법무법인 한누리 쪽은 파두 사태가 125조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고 본다. 특례상장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술력 있는 기업이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 성장하게끔 돕는 제도 그 자체에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기업가치를 부풀리면 당장 자금 조달에 성공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하기 마련이다. 주가는 과대평가된 기업가치를 받쳐주지 못한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8년 이후 기술특례로 상장한 기업 149곳 가운데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기업이 102곳(68%)에 이른다. 근본적으로는 제도 탓이 아니고 제도를 운용하고 활용하는 사람 탓이다. 물론 제도상 허점이 있다면 보완해야 한다.
MTN 기업경제센터장
‘기업공시완전정복’ ‘이것이 실전회계다’ ‘하마터면 회계를 모르고 일할 뻔했다’ ‘1일 3분 1회계’ ‘1일 3분 1공시’ 등을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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