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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 경쟁사 차렸어요"…퇴사 전 만행에 '충격' [곽용희의 인사노무노트] - 한국경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업무용 컴퓨터를 포맷하거나 업무 관련 정보를 삭제해 버린 직원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법원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게다가 경쟁업체로 취직하거나 경쟁업체를 차려버린 경우인데도 법원이 근로자의 책임 인정에 엄격한 모습을 보이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회사 정보 포맷하고 퇴사해 동종업체 차렸다

주방용품 판매업체 B사에서 2020년 1월 부터 근무하던 A씨는 2022년 3월 퇴사했다.

B사는 2020년 6월부터 미국의 P사와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전자제품을 수입해 국내에 판매해 왔고, 2022년 3월부터는 홈쇼핑 판매를 시작하며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래서 제품 수입을 더 늘리려는 순간 P사로부터의 공급계약을 종료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알고 봤더니 A씨가 3월 퇴사 이후 경쟁업체를 차려 대표가 된 다음, 4월부터 P사와 독점 판매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화가 난 B사는 A씨를 상대로 소송에 돌입했다. A씨가 퇴사하면서 업무용 노트북에 있는 다수의 거래처와 관련된 자료를 복원이 불가능할 정도로 전부 포맷하고, 지급받은 아이패드도 초기화한 사실을 들어 "업무를 방해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가 그간 P 제품 수입을 위해 1년 10개월 동안 국내 판매망 구축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홈쇼핑도 시작했는데, A씨가 판매망과 판매 방식을 그대로 차용해 막대한 이익을 거둔 것도 '부당경쟁 방지법'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바탕으로 노트북 포맷 등 업무방해로 인한 손해 1000만, 부정경쟁행위로 인한 손해 2000만 원 등 합계 6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A씨는 "중요한 자료는 공용 폴더에 저장돼 있고, 대부분 대표이사 및 임직원들과 이메일로 자료를 공유하면서 업무를 처리했다"며 노트북에 업무 관련 자료를 저장할 필요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맡은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은 지난 10월 "포맷으로 인한 업무방해가 충분히 입증되지 못했다"며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노트북을 포맷했다고 주장하면서도 어떤 내용의 어떠한 가치 있는 정보가 삭제됐는지, 어떤 업무가 방해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하고 있다"며 "포맷 당시 업무 관련 자료가 노트북에 저장돼 있다는 사실이나, 그런 자료의 삭제로 말미암아 손해가 발생한 사실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A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영업 자료' 삭제한 러시아 직원..."배상 책임 없음"

주식회사 C사도 러시아 국적의 근로자 D씨를 상대로 업무 방해외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가 지난 10월 패소했다. D씨가 회사에 근무하는 동안 거래처 목록 및 수출 제품에 관한 거래처별 단가에 관한 자료 등 영업비밀을 경쟁업체에 유출하거나 컴퓨터에서 모두 삭제했다는 이유에서다.

사건을 맡은 의정부지법 제1민사부는 D씨가 퇴사 전 본인이 사용하던 컴퓨터의 파일과 프로그램 등을 삭제한 사실은 물론 러시아 거래처의 직원에게 ‘경쟁업체와 일하고 있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낸 사실도 인정다.

하지만 "영업 비밀로 관리돼 비밀 관리성 요건을 충족한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D씨 측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객관적으로 정보가 비밀로 유지 관리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며 "삭제한 정보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못해 영업 비밀에 해당하는 정보를 유출하거나 삭제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2022나220428).

앞서 사례는 딴 마음을 품고 업무상 자료를 반출하거나 삭제한 후 퇴사한 직원에게 별다른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는 점을 잘 나타내주는 사례다. 어떤 정보가 유출되거나 삭제됐는지 혹은 객관적으로 비밀 정보인지 입증 책임이 사업주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포맷을 해버리거나 자료 관리가 미숙해 자료 보안 설정 등이 미숙한 중소 기업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드물게 반대 사례도 있다. 회사 컴퓨터를 포맷해 자료를 삭제한 후 인수인계 없이 퇴사한 행위는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며 실형을 내린 대법원 판결(2017도16384)이다. 근무하던 회사 대표에게 불만을 갖고 퇴사를 마음먹은 직원 3명이 동종 업체를 설립하기로 하고, 퇴사 전 약 3개월 동안 공용 폴더에 자료를 백업하지 않고 퇴사 직전엔 사용하던 컴퓨터 드라이브를 포맷해 자료를 삭제한 뒤 인수인계 없이 회사를 나온 사례다.

다만 직원들의 공모 과정이 적나라하게 입증됐고, 퇴사 후 차린 회사의 이름 자체도 기존 회사와 거의 동일해 업무방해죄의 고의가 상대적으로 쉽게 입증된 케이스다.

직원이 퇴사하면서 업무용 컴퓨터, 업무용 핸드폰을 포맷하는 경우는 적지 않다. 업무용 파일조차 포맷하면서 "내가 만든 자료니까 내 소유"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회사는 반대로 "재직 중에 만들어진 자료는 회사 소유"라고 반박하면서 다툼이 일어나곤 한다.

직원 입장에서는 함부로 자료를 포맷할 경우 업무방해죄, 부당경쟁 방지법 위반, 민사상 손해배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입장에선 퇴사자들의 악의를 입증하거나 어떤 자료가 유출되거나 삭제됐는지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특히 법적으로 책임을 묻더라도 회사가 입은 피해를 복구하기 쉽지 않아 평소 꼼꼼한 관리가 필요하다.

한 노동법 전문 변호사는 "영업 네트워킹이나 기술이 중요한 시대"라며 "중요 정보의 경우 대표 차원에서 평소 점검을 하고, 회사 공용 폴더 등에 자동 업데이트 기능 등을 활용하는 등 만반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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