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와 전쟁, 장기전 접어들면서
전세계 경기 전망도 한층 어두워져
우리 수출·경상수지 악화 우려 커져
증권사,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 높여
미국발 물가 충격에 금융시장이 요동친 1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 이날 거래를 마친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물가와의 전쟁이 장기전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통화긴축 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한국은행의 셈법도 한층 복잡해졌다. 나날이 치솟는 원-달러 환율과 임박한 큰 폭의 한-미 금리 역전은 한은의 금리 인상을 재촉하는 요인이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등으로 전세계 경기 전망이 어두워지면서 우리나라 실물경제가 받을 충격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14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를 보면, 이날 케이비(KB)증권과 삼성증권 등은 우리나라 연말 기준금리 전망치를 0.25%포인트씩 높였다. 삼성증권은 “현시점에서 한국의 기준금리(현재 연 2.50%) 상단을 연 3.0%로 제시하는 것은 희망고문일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전망치를 3.25%로 올렸다. 10월에 한은이 ‘빅스텝’(기준금리 0.50%포인트 인상)에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케이비증권은 연말 정책금리 전망치를 연 2.75%에서 3.0%로 올리고, 특히 내년 초에도 추가 인상에 나설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해 한은 통화정책방향결정회의는 10월과 11월 두번 남아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이 더욱 가팔라지면서 한은도 발걸음을 재촉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분석이다. 이날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페드워치를 보면, 연방기금금리 선물시장에서 전망한 올해 말 미국 정책금리 목표범위는 상단 기준 4.34%(확률 가중평균)를 기록했다. 불과 하루 전에 전망한 4.05%를 크게 웃돈다. 시장의 전망대로라면 한국 기준금리가 3.0%까지 올라도 양국의 금리 역전 격차가 1%포인트를 넘게 된다. 이는 이미 1400원에 육박하는 원-달러 환율을 더욱 밀어올리는 압력이 될 수 있다. 한은 내부에서도 한-미 금리 역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달 25일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한 금통위원은 “국제수지 관점에서 미국과의 과도한 금리차가 지속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역전 기간이 길어지거나 주요 신흥국의 금융불안이 확산될 경우 국내에서도 일부 외국자본이 유출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기화에 빠져들 가능성이 한층 커진 인플레이션도 한은이 빅스텝을 배제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국제 유가가 최근 하락했음에도 전세계 인플레이션은 크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는 서비스 물가도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고,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물가를 밀어올리는 형국이다. 문제는 미국발 통화긴축이 우리 경제의 실물·금융 전반에 줄 타격이다. 미국에서 소비 수요가 둔화하면서 우리나라 수출이 받을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침체 가능성이 있는 유럽과 회복세가 더딘 중국 경제도 우려를 더하는 요인이다. 이미 원자재 가격 상승과 중국 경기 둔화 등의 여파로 7월 상품수지는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8월에는 경상수지가 월간 단위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마저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다.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한은 조사국은 이날 발간한 ‘미국·유럽의 경기침체 리스크 평가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미국이 향후 1년 이내에 경기 침체에 빠질 확률을 15%로 추정했다. 지난 5월 추정치(0.4%)보다 크게 뛴 것이다. 조사국은 높은 인플레이션 지속과 급속한 금리 인상, 연방준비제도의 과도하거나 미흡한 정책 대응을 리스크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미국·유럽 경제의 침체가 현실화할 경우 무역 경로 등을 통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짚었다. 결국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씨름하는 한은의 금리 인상 경로도 더욱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금통위에서 한 위원은 “경기와 물가의 상충 관계가 보다 뚜렷해질 것으로 보인다”며 “앞으로 기준금리 인상경로를 결정할때 어려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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