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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PF대출 중단…개발사업 '초비상' - 한국경제

국민·신한·우리·하나銀, PF심사 올스톱…하반기 대출 '제로'
수도권 대단지 재개발 연쇄 좌초 위기…주택 공급대책 차질

금융권이 일제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축소에 나서면서 주택 개발 사업이 연쇄 좌초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자금 문제로 수년간 착공이 미뤄지다가 사업자가 바뀐 뒤 공사를 재개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오피스텔 개발 택지. 허문찬 기자
금융권이 일제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축소에 나서면서 주택 개발 사업이 연쇄 좌초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자금 문제로 수년간 착공이 미뤄지다가 사업자가 바뀐 뒤 공사를 재개한 서울 동대문구의 한 오피스텔 개발 택지. 허문찬 기자
주택개발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이 급속도로 얼어붙고 있다. 시중은행이 사실상 PF 대출 전면 중단에 들어가고 2금융권은 대출 연장 조건으로 최소 연 10~20%의 초고금리를 요구하고 있어서다. 수도권 3000여 가구 대단지 재개발사업마저 자금을 마련하지 못해 사업 중단 위기에 내몰린 상황이다. 주택개발 사업의 핵심인 PF 대출이 연쇄 좌초 위기를 맞으면서 연간 50만 가구씩 계획한 정부의 주택 공급대책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21일 금융·부동산개발업계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PF 대출 심사를 사실상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개발업계에선 “올 하반기 들어 1금융권의 PF 대출이 실행된 사례가 거의 없다”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PF 대출 중단 여부에 말을 아끼면서도 “보수적으로 심사하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1금융권이 PF 대출을 옥죄자 제2금융권인 증권사, 캐피털사 등은 신규 대출 및 연장 조건으로 연 10~20%의 고금리를 요구하고 있다. 시행업계에선 “그 이자에 대출받느니 공사를 포기하는 게 낫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경기 남부권 신도시에서 3200가구 규모 아파트 공급을 준비 중인 디벨로퍼 대표 A씨는 “브리지론(부동산 개발 초기 대출) 연장을 저축은행에 신청했는데 만기 연장 시 이자율이 연 20%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토로했다.

[단독] 은행, PF대출 중단…개발사업 '초비상'
가파른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시장 급랭은 PF 대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3월 연 5.7%이던 증권사의 부동산 PF 대출 평균 금리는 6월 이후 두 배 이상으로 뛰었다. 서울의 한 디벨로퍼 업체 대표는 “3월에는 연 5%대에 대출받았는데, 6월 인접한 다른 사업장에서 새 사업을 하려고 하니 10%를 달라고 했다”며 “두 달 고민하는 사이 지금은 대출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지난해까지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내주던 금융권은 최근 부실화 우려가 커지자 급격히 돈줄을 죄고 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에 따르면 올 7, 8월 신탁사의 토지매각 공매 건수는 34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21건)보다 54.3%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 주택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PF 금리 年10%, 연장땐 20%…"대출은 끝났다" 주택사업 포기 속출
돈줄 마른 PF시장…올해 주택공급 '빨간불'

서울 영등포구에서 500실 규모 오피스텔 개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시행사의 A대표는 최근 저축은행으로부터 ‘내부 규정 변경으로 대출을 해줄 수 없다’는 연락을 받았다. A대표는 “한 달 전 365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승인이 났는데 이제 와서 이유 설명도 없이 안 된다고 해 황당하다”고 말했다. 그는 “백방으로 뛰고 있지만 자금 확보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금융권의 PF 대출 옥죄기에 부동산 개발 시장이 아우성치고 있다. 지난해까지 경쟁적으로 PF 대출을 해주던 금융권이 하반기부터 급격히 돈줄을 죄면서 시장에서 일대 혼란이 일고 있다. 대출 심사를 거절하거나 금리를 크게 높이고, 대출 연장 시 부분상환을 요구하는 등 지난해까지 볼 수 없던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개발업계 한 관계자는 “급격한 금리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며 “금융감독원의 자본건전성 강화 방침이 대출 규정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말했다.

○금융사 “돈 되던 PF가 이제 최대 리스크”

21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받은 ‘전국 주택 착공 추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58만3737가구의 주택이 착공했지만 올해(7월까지)는 착공 실적이 22만3082건에 그치고 있다. 미분양 주택 수는 같은 기간 1만4864가구에서 3만1284가구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급격히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에 금융권은 PF 대출에서 줄줄이 발을 빼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연말까지 총 자산 대비 자기자본 비율을 철저하게 관리하라는 게 금융당국 지침인데 대출 한 건에 수백~수천억원이 들어가는 PF 대출은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했다.

공격적으로 PF 대출을 하던 증권사, 저축은행 등도 몸사리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D증권사 PF담당 임원은 “원자재값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증해 PF 대출 사업장의 사업성이 크게 악화되고 있다”며 “감독당국도 금융사의 PF 규제를 강화하고 있어 투자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올 1분기 증권사 PF 대출 연체율은 4.9%로 2019년 동기의 1.3% 대비 크게 높아졌다. 한 증권사 임원은 “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리스크에 노출되지 않는 게 지상 과제”라며 “미국 부동산 시장도 사업성이 악화되는 상황이라 요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채권 투자나 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우량 사업장은 PF 대출해줘야”

부동산개발은 돈 가물에 연쇄 좌초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경기 의정부시에서 900가구 규모 아파트용 토지를 매입한 부동산 개발업체의 B대표는 최근 대출 연장을 신청하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해당 은행은 땅 구입자금 등 개발 사업 초기자금으로 단기 대여한 ‘브리지론’의 연장 이자로 연 20%를 요구했다. 그는 “20% 이자율은 사실상 사업을 접으라는 얘기”라고 토로했다.

우량·비우량을 가리지 않는 PF 대출 중단은 자칫 개발사업 좌초를 넘어 금융권 PF 부실과 주택 공급 차질로 이어지는 연쇄반응을 낳을 수 있다. 일각에선 토지 매입을 위한 브리지론을 실행한 뒤 만기 때 PF 대출로 갈아타지 못하는 토지는 부실채권(NPL)으로 쏟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금력을 갖춘 국내 상위권 디벨로퍼 업체 관계자는 “지금은 무리해서 개발사업을 할 시점이 아니다”며 “실탄을 들고 있다가 연말이 지나 택지가 헐값에 나오면 그때 싸게 매수해서 건물을 올려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PF 대출 ‘돈맥경화’가 심화하면 연간 50만 가구의 주택 공급을 통해 시장을 안정화하겠다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부동산 PF를 통한 개발사업은 통상 2~3년의 시차를 두고 시장에 공급물량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심사를 통해 우량한 사업장에는 신규 PF 대출의 물꼬를 터줘야 향후 급격한 공급 경색을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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