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각에선 지금과 가장 비슷한 분위기였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에 대한 분석을 통해 향후 장기 하락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매일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년대 초반을 덮쳤던 부동산 침체와 지금 시점의 부동산 시장 상태를 비교·분석해봤다.
◆ 금융위기 이후 강남 재건축 최대 30% 빠져
집값 상승세로 인해 각종 부동산 관련 규제가 시장을 압박하고 있다는 점도 일치한다.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은 노무현 정권 말기로 분양가상한제, 분양원가 공개제도, 부동산담보대출(LTV·DTI) 규제 등이 도입·확대됐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도 문재인 정부가 무려 26차례나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분양가상한제 확대, 고가 아파트 대출 축소 등이 이뤄졌다. 둘 다 부동산 시장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은 얼마나 떨어졌을까. 하락세가 정점에 달했던 2012년 7월 부동산114 지수를 기준으로 서울 아파트값은 금융위기 직전보다 7.5%가량 하락했다. KB국민은행 지수로는 4.7%,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지수 기준으로는 9% 떨어졌다.
특히 강남 재건축 하락폭은 30% 전후로 서울 평균보다 훨씬 컸다. 강남 재건축의 상징인 은마아파트 실거래가는 2012년 2월 전용 77㎡ 기준 7억9000만~8억3000만원 수준으로 최고가 대비 30%나 급락했다. 같은 해 3월 개포주공 3단지 전용 36㎡가 5억4500만원에 실거래됐는데 이는 최고가 7억4500만원에 비해 27%나 빠진 가격이다.
앞으로 서울 아파트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와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면 서울 평균 10% 내외, 재건축 평균 약 30%의 하락폭을 나타낼 것이라고 예측해볼 수 있다.
◆ 10년 전보다 심한 '버블'?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시장보다 지금이 더 심각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현재 서울 집값이 일반적인 사람들이 감당하기엔 벅찬 수준으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버블'이 심하게 낀 만큼 부동산 시장이 완벽하게 하락세로 돌아서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흐를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로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203.7로 집계됐다. 주금공에서 해당 지수를 산출하기 시작한 2004년 이래 가장 높다. 특히 200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소득의 50% 이상을 대출 상환에 써야 한다는 의미다.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위소득 가구가 표준대출을 받아 중간가격 주택을 구입할 때 대출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수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부동산 호황기 때 가장 높았던 서울 주택구입부담지수는 164.8(2008년 2분기)이었다.
거래절벽도 훨씬 더 심하다. 금융위기 이후 불황기에 서울 아파트 거래가 가장 적은 시기는 2012년(4만1079건)이었다. 2010년대 초반 최악의 불황 때도 서울 아파트는 매년 5만~7만건 거래를 기록했다. 하지만 올해 1~9월 서울 아파트 거래는 9081건에 불과하다. 이 추세대로면 올해는 2만건도 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집값에 엄청난 타격을 주는 '경제 충격'도 아직 없다. 2008년엔 금융위기로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며 수년 동안 불황이 지속됐는데, 지금은 집값 약세 원인이 그때와 다르다는 것이다. 금리 인상과 장기간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피로감 등이 원인으로 꼽히지만 명확한 요인은 없다는 의미다.
◆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금리
지금까지 집값 상승세를 주도해온 저금리 상태는 힘이 빠지고 있다. 무섭게 오르는 금리와 모든 부채를 따지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시행 등으로 자금 마련이 어려워졌고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 이전 기준금리는 5.25%였으며 위기 발생 이후 2009년 2월까지 6차례에 걸쳐 2.00%로 내려간다. 이후 금리가 슬금슬금 올라 3.25%까지 갔지만 인상 속도는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엔 기준금리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사실상 '제로금리'를 유지하다가 약 1년 사이에 2.5%까지 급등했다. 속도와 방향성이 2010년대 초반보다 더 좋지 않은 상태다.
피부로 느끼는 금리 인상 속도는 더 빠르다.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올해 7월 신규 취급액 기준 가계대출금리는 4.52%로, 2013년 3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16%로 전달보다 0.12%포인트 올랐다. 2013년 1월(4.17%) 이후 9년6개월 만에 가장 높다. 금융감독원 금융상품 통합 비교공시상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주담대 혼합형(고정형) 금리는 이미 6%를 넘어섰다.
문제는 은행권 대출 금리가 더 급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발표된 8월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예상을 상회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긴축 모드는 확실시된다. 지난달 미국 CPI는 전월 대비 0.1%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0.1% 하락을 점쳤는데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 당장 미국 연준의 기준금리 인상이 가팔라질 것이라는 우려에 채권 금리가 요동쳤다.
은행권 안팎에선 연내 대출 금리 상단이 8%대에 진입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다. 8%대 주담대 금리가 등장할 경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의 일이 된다. 은행권 관계자는 "인플레이션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전세가율·공급 부족이 급락 위험 막아
하지만 반론으로 금융위기 직후와 지금 사이 중요한 차이점 두 가지를 들어 이번 하락세가 장기 급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바로 정비사업 규제로 인한 '공급 부족', 꾸준한 전세금 상승에 따른 '높은 전세가율'이다.
먼저 각종 규제에 따른 공급(입주 물량) 부족은 여전한 문제다. 2007년까지는 부동산 경기 흐름이 좋았고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밀어내기식 분양이 많았다. 이때 준공한 물량이 2008년 이후 대규모 미분양으로 이어지면서 당시 미분양 가구는 전국적으로 16만5000여 가구, 수도권만 2만7000여 가구에 달했다. 반면 지금은 수도권 미분양 물량이 4000여 가구에 불과하다. 또 재개발·재건축 규제 등으로 서울 입주 물량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2만가구 안팎에 그칠 전망이다. 2010년대 초반에도 서울 입주 물량은 매년 3만~4만가구를 웃돌았다.
주택 수급 상황을 보여주는 주택보급률(일반가구 수 대비 주택 수 비율)도 공급 부족이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주택 부족이 심한 서울은 2020년 기준으로 94.9%를 기록해 주택이 일반가구보다 20만가구 적다. 94.9%는 거의 10년 전 수준(2012년 94.8%)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전세가율도 금융위기 직후보단 상대적으로 높다. 서울 아파트 기준 전세가율은 금융위기 당시 38.18%로 낮았지만 현재는 54.7% 수준으로 16%포인트가량 차이가 난다. 물론 금융위기 이전엔 전세자금 대출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완벽한 비교는 어렵다. 일각에선 전세대출이 나타나기 이전과 이후의 전세가율 최고점을 비교하면 상대적인 추산이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전세대출이 없을 당시 역대 최고점은 64.6%(2001년 10월), 존재할 때는 75.1%(2016년 6월)다. 부동산 전문 블로거 '삼토시'는 "전세대출이 전세가율을 10%포인트 정도 높였다는 추측이 가능하다"며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전세가율 50% 선이 무너지면 위험한 상황이 되지 않을까 예측한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스웨덴 작년比 10%안팎
7월 美주택가격도 3년만에 하락
실러 교수 "재앙 고려해야할 때"
그동안 부동산 시장 호황은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었다.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증가와 빠듯한 공급은 미국, 유럽 등을 가리지 않고 글로벌 부동산 시장을 폭등시켰다.
하지만 최근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각 나라의 금리 인상이 잇따르면서 한껏 달아올랐던 부동산 시장이 꺼질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는 상황이다.
실제로 몇 달 전만 해도 "부르는 게 값"이라는 말이 나오던 미국 집값이 급격히 하락세로 돌아섰다. 모기지 데이터 분석회사 블랙나이트 조사에서 7월 미국 주택가격은 전월 대비 0.77% 떨어졌다. 월간 기준 3년 만에 처음 하락한 것으로, 2011년 1월 이후 최대 하락폭이다. 블랙나이트는 "평균 수치로 보면 낙폭이 큰 것 같지 않지만, 새너제이(-10%), 시애틀(-7.7%), 샌프란시스코(-7.4%), 샌디에이고(-5.6%), 로스앤젤레스(-4.3%), 덴버(-4.2%) 등 주요 중서부 도시는 몇 달 사이에 주택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밝혔다.
부동산 정보 업체인 질로도 7월 미국 주택가격이 전월보다 0.1% 하락했다고 밝혔다. 질로 조사에서 월간 가격이 떨어진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
호주, 뉴질랜드, 캐나나 등도 부동산 시장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캐나다의 7월 평균 집값은 올해 초 사상 최고치에 비해 8% 가까이 하락했다. 뉴질랜드 역시 7월 집값이 지난해 기록한 사상 최고치보다 11% 급락했다. 2020년 팬데믹 이후 최대 월간 낙폭이다. 유럽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운 시장 중 하나였던 스웨덴에서도 주택가격이 올해 봄 대비 8% 떨어졌다.
부동산 컨설팅 업체 나이트프랭크에 따르면 브라질, 칠레,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감안한 실질 주택가격이 내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변동 대출 금리를 채택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주택 금융비용이 급격히 상승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나라들이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면서 경제 전문기관도 부동산 시장 침체를 전망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미국 주택 시장에 관한 보고서를 내고 올해 신규 주택 판매(22% 감소), 기존 주택 판매(17% 감소)가 급감하고 내년에도 신규 주택 판매(8% 하락), 기존 주택 판매(14% 하락)가 줄어드는 등 침체를 전망했다. 시장 침체의 이유는 금리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곡물값과 유가가 폭등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상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빨라지고 있다. 기준금리가 올해만 4차례 올라 연초 0.25%에서 2.5%까지 인상됐다. 시장에선 연말 금리가 4%를 넘어선다는 예상까지 나오고 있다. 모기지 금리는 작년 말 3%에서 6% 전후로 치솟았다.
블룸버그 역시 비슷한 이유를 들며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이 침체 상황으로 넘어가고 있고, 특히 경제활동을 시작한 20·30대 MZ세대 등 젊은 층이 위험하다"고 진단했다.
주택 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2000년대 금융위기와 2008년의 리먼 쇼크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한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최근 야후파이낸셜과의 인터뷰에서 "주택 거래와 주택 인허가 건수가 감소하고 있다. 여러 조짐이 있는데, 재앙(버블 붕괴)이 아닐 수도 있지만, 재앙을 고려해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지금 상황이 매우 닮아 보인다. 그때와 비슷할 정도로 경제 상태가 나쁘다. 부동산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큰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징조가 나타나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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