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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매력 없다"…삼성·현대차 임원 자리 제안해도 'NO' - 한국경제

국내 대기업들이 실력 있는 ‘최고급’ AI 전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인재 채용 행사를 열고 있다. 노원일 삼성리서치아메리카 부사장이 지난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 테크포럼 2022’에서 미국 주요 대학 박사급 인재들에게 회사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국내 대기업들이 실력 있는 ‘최고급’ AI 전문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세계 곳곳에서 인재 채용 행사를 열고 있다. 노원일 삼성리서치아메리카 부사장이 지난 22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삼성 테크포럼 2022’에서 미국 주요 대학 박사급 인재들에게 회사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구글, 애플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일찌감치 인공지능(AI)·빅데이터 분야 인재 영입에 열을 올렸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산업계의 디지털 대전환(DX)이 가속화하면서 인력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대기업은 AI 인재 확보전에서 크게 뒤처진 모양새다.

기업들의 우울한 현실은 좀처럼 늘지 않는 AI·빅데이터 관련 임원 수에서부터 드러난다. 28일 한국경제신문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30개사의 올해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담당 업무(직책명)에 AI, 빅데이터, 디지털 전환(DT·DX) 등의 단어가 들어가 있는 임원은 지난 6월 말 기준 43명에 그쳤다. 전체 30대 상장사 미등기 임원(3285명)의 1.3% 수준에 불과하다. AI 전담 임원이 없는 곳은 14곳(46.7%)에 달했다.

글로벌 기업 간 AI 인재 확보전이 불붙은 2019년 말 이후 2년 반 동안 한국 30대 기업의 AI·빅데이터 담당 임원 수는 4명(2019년 말 39명→43명), 비중은 0.05%포인트(2019년 말 1.25%→1.30%) 늘어나는 데 그쳤다. 구글 출신 한 스타트업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구글이나 애플 본사에선 발에 차이는 게 AI, 빅데이터 전문가”라며 “전체 임원에서 AI·빅데이터 전문가 비중도 10% 이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전자 대기업 사장은 “애플은 부품을 연구개발(R&D)하는 인력만 2만 명에 육박하는데 삼성전자는 1500명 정도로 10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국내에 고급 AI 인재 육성을 위한 생태계가 갖춰지지 않은 점, 미국 캐나다 등 AI 선진국 우수 인재가 한국 기업 근무를 꺼린다는 점 등이 ‘허들’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조성배 연세대 컴퓨터과학과 교수는 “범용 인력 100명보다 최고급 인재 한 명이 AI 업계와 학계 수준을 좌우한다”며 “최고 인재를 키우는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韓 대기업 임원 제안에 "NO"
30대 코스피 상장사 중 14곳 AI조직 이끌 '전담임원' 없어

실리콘밸리 빅테크 인공지능(AI) 부서에서 경력을 쌓은 한국인 엔지니어 A씨는 최근 국내 모빌리티 기업의 이직 제안을 거절했다. 연봉 인상에 전무급 대우도 약속받았지만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A씨는 “한국 기업의 AI 사업은 여전히 불확실해 보인다”고 말했다.
"한국 매력 없다"…삼성·현대차 임원 자리 제안해도 'NO'
3년 전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컴퓨터공학 박사를 딴 한국인 B씨는 졸업 후 구글로 직행했다. 그는 “경력개발 경로(커리어 패스)를 생각할 때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의 취업은 고려했지만, 한국 대기업은 선택지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임원 약속해도 한국으로 안 온다”

AI·빅데이터 인재 확보는 한국 대기업의 최대 과제 중 하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AI 인재 확보전’에서 변방에 밀려나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유가증권시장 30대 상장사조차 AI 임원 영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8일 한국경제신문이 상반기 사업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AI 전담 임원’(담당업무나 직책명에 AI, 빅데이터, DX, DT 등의 단어 포함)이 없는 곳이 14곳(46.7%)에 달했다. 이들 기업 AI 전담 임원은 43명으로, 전체 미등기임원의 1.3%에 그쳤다.

30대 기업에 AI 인력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전문 임원으로서 대규모 AI 조직을 이끌 만한 고급 인재 풀이 부족하다는 게 산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한 실리콘밸리 엔지니어는 “한국 대기업이 미국 빅테크기업의 부장급 직원에게 임원 자리를 제안해도 많은 사람이 ‘노(No)’라고 답한다”며 “귀국해야 할 만한 급한 사정이 없다면 미국에 있는 게 경력 관리와 가족들을 위해 낫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기껏 키운 국내 AI 인재들은 해외로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다. 국내 한 AI 전문대학원 교수는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은 이상 재학생과 졸업생이 구글 인턴 등으로 빠져나간다”고 전했다.

○해외로 나간 인력이 들어온 인력의 8배

‘S급’이 아닌 인재도 부족한 것은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공개한 ‘이공계 인력의 국내외 유출입 수지와 실태 보고서’를 보면 2017년 기준 해외로 나간 국내 이공계 인력은 3만9583명, 국내로 유입된 인력은 4927명으로 집계됐다. 배순민 KT AI2XL 연구소장은 “AI와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에 꼭 S급 인재만 필요한 게 아니다”며 “학부 졸업생 수준의 인력들을 투입해야 하는 업무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질적으로 부족하면 인해전술이라도 써야 하는 것”이라며 “한국의 AI산업을 농업에 비유하면, 물(인재)의 퀄러티를 따질 게 아니라 밭을 논으로 바꿀 수 있는 수준의 용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AI산업에서 상대적으로 ‘막노동’ 취급을 받는 데이터 관리 전문가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현규 정보통신기획평가원 AI·데이터 PM은 최근 열린 한 간담회에서 “AI 인력 양성과 관련해 지나치게 알고리즘과 모델 창출에 신경을 쓰다 보니 데이터 인력이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내 자격시험 실시하고 외부와 협력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기업은 자체적으로 인력을 키우고 있다. 실제 업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정의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 KT는 임직원의 AI 활용 역량 강화를 위해 ‘사내 자격시험’을 도입했다. 지난 2월부터 ‘기업 AI 실무 자격인증(AIFB: AI Fundamentals for Business)’이란 이름을 내걸고 외부 응시생도 받고 있다. 이 회사는 동원, 우리은행, 한국투자증권, 한진, 현대중공업, LG전자 등과 함께 ‘AI 원팀’을 조직하고 공동 인재 양성, 오픈 이노베이션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부가 외국 인재의 국내 유입을 위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을 주변 국가 우수 AI 인재들이 모이는 ‘아시아의 실리콘밸리’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홍충선 경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뉴질랜드, 중국 등 10여 개국 학생을 유치하고 석·박사 과정을 밟게 했는데 대부분은 정주 여건이 좋은 미국 스웨덴 등으로 떠났다”며 “학위 취득 후에도 한국에 정착할 수 있는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윤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은 “영국이 런던을 ‘인재 메카’로 키우기 위해 세계 50위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특별비자’를 내주고 있는 정책을 참고할 만하다”고 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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