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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국 반도체 제재, 4년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됐다 - 한국경제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美 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2017년 백악관에
'반도체 리더십 유지를 위한 전략보고서' 제출

"정부가 나서 중국 기업 견제해달라" 요청
4년 뒤 보고서 전략대로 움직이는 미 정부와 의회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직원들이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를 들고 있다. 한경DB

SK하이닉스 이천공장 직원들이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를 들고 있다. 한경DB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글로벌 통신사 로이터는 1일 "중국 정부가 미국 구글에 대한 반(反) 독점법 조사를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중국의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 등이 구글의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에 대해 곧 조사를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는 내용이다. 구글에 수조원 규모 과징금이 부과되고 중국 내 구글 사업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예상이 나온다. 산업계에선 미국의 중국 기업 규제에 대한 '반격' 성격으로 평가하고 있다
미 대통령 기술자문위, 2017년에 '중국 제재 전략' 대통령에 보고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중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제재가 4~5년 전부터 치밀하게 기획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는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개최한 ‘격화되는 미·중 기술 패권 전쟁, 한국 반도체 기업의 위기 돌파 방안’ 웨비나(웹+세미나)에서 "미국 오바마 행정부 당시 대통령 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미국의 장기적인 반도체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보고서를 백악관에 보고했다"며 "저자들은 대학교수들이 절반이고 나머지는 에릭 슈미트 구글 창업자 등을 포함한 산업계 리더들"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2017년 1월 백악관에 보고됐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은 이 보고서의 번역본을 공개했다. 제목은 '미국 반도체 산업 장기적 우위를 위한 전략 보고서'다.

"중국 반도체 기업과 '자유경쟁' 주장하는 건 안일한 생각"
보고서를 보면 미국 과학기술자문위원회는 반도체 산업에 대해 '미국 경제 번영과 국가 안보의 원동력'이라고 표현했다. 당시 미국 반도체 산업의 상황과 관련해선 △혁신이 근본적인 기술적 한계에 봉착해 둔화되고 있고 △중국 정부가 1000억달러 넘는 기금을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을 재편성하고 있고 △미국 산업의 경쟁력이 위협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성장하고 있는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 "중국의 (정부 주도) 산업 정책은 반도체 혁신과 미국 국가 안보에 실질적인 위협이 되고 있다"며 "미국의 경제적. 안보적 이익에 반하는 중국 정책들에 적절히 대응해야한다"고 적었다.

미국이 혁신 기술을 직접 보유해야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역설했다. 위원회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은 국방 시스템과 미군의 군사력에도 중요하다"며 "반도체의 (중국 보급은) 미국의 사이버 안보를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 정부의 대응이 안일하다는 뜻도 나타냈다. 위원회는 "다른 국가의 산업정책이 미국의 시장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자유경쟁이 최적의 결과를 낳을 것이란 가정은 안일한 생각"이라고 지적했다. 타국이 미국 반도체 산업을 송두리째 집어삼키려고 하는 데 '공정한 경쟁', '자유 무역' 등을 강조하는 건 옳지 않다는 얘기다.

백악관 전경. 한경DB

백악관 전경. 한경DB

정부에 노골적으로 자국산업 보호 요청한 美 반도체 기업들
보고서 후반부엔 미국 연방 정부와 주 정부, 업계, 학계가 공동 협력과 노력을 통해 중국 문제에 적극 대응하고 해결해야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위원회는 미국 정부에 노골적으로 자국 반도체 산업 보호를 요청했다. 우선 미국 정부가 양자 또는 다자간 포럼 논의 등을 통해 수출 통제를 강화하고 내수시장 투자를 적극 독려해야한다고 제안했다. 또 중국의 위반 사항에 대해 지속적으로 대응함으로써 중국 정책에 대한 투명성을 높일 것을 주문했다.

자국 반도체산업 혁신을 위한 인센티브도 요청했다. 대학 인력 양성과 해외 인력 유치, 기초 연구기금 지원, 법인세법 개정, 규제 개혁을 위한 정책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위원회는 보고서 말미에 "적대적인 중국 산업 정책에 대해 미국 연방정부의 적극적인 노력과 간섭이 필요하다"고 다시 강조했다. 또 "미국의 지도력을 유지하고 미국과 세계 경제를 진전시키며, 국가를 안전하게 지켜나가기 위해선 언급된 권고사항이 반드시 이행돼야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 전략 실행 옮기는 미국 의회
약 3년 전 미국 과학기술자문위원회가 제안한 정책들은 지난해부터 가시화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5월부터 5G 통신장비와 스마트폰 반도체를 만드는 화웨이를 제재해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최근은 화웨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중국 1위, 세계 5위 반도체 수탁생산(파운드리) 전문업체 SMIC에 대한 제재도 시작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화웨이나 중국 SMIC 등에 미국 기술이나 장비를 수출할 때 미국 상무부의 허가(라이선스)를 받아야한다.

미국 제재 리스트에 오를 중국 반도체 기업으론 낸드플래시 업체 중국 YMTC(양쯔메모리)와 D램 업체 CXMT(창신메모리)가 꼽힌다. 이 두 업체는 중국 정부가 지분을 갖고 있는 사실 상의 국유 기업이다.

미국 정부는 보고서에 적힌대로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타격과 함께 자국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블룸버그와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에 따르면 미국 의회에서 조만간 자국 반도체산업에 약 250억달러(약 30조원) 규모 연방보조금을 지원하는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공화당과 민주당 정당 구분 없이 초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는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SIA는 "정부가 500억 달러를 투자하면 향후 10년 간 미국에 19개의 반도체 공장과 7만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긴장 상태다. 대형 IT기업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앞뒤 안 가리고 중국 유력 반도체 기업들을 공격할 정도로 자국 산업 보호에 나서고 있는데 우리 정부는 '기업 규제'에 관심이 큰 것 같다"며 "사업 전략 수립과 경쟁에 투자해야할 시간을 규제 대응에 소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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