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이번 사태를 촉발한 러시아의 경제는 서방 진영의 광범위한 제재에도 선방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지만 결국 큰 충격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러시아와 서방 진영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는 '치킨 게임' 양상이 빚어지면서 세계 경제의 소모전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심초사하는 것은 한국 경제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와 가파른 물가 상승, 통화 긴축 등으로 세계 경제 전망이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주요 9개 투자은행(IB)의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지난 6월 말 기준 평균 3.1%로 한 달 사이에 0.3%포인트 낮아졌다. 내년 성장률 예상치는 0.2%포인트 떨어진 3.1%다.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2.3%로 0.4%포인트, 내년은 1.3%로 0.5%포인트 하락했다.
유로존(독일·프랑스 등 유로화 사용 19개국) 성장률은 올해 세계 평균을 밑도는 2.7%를 기록하고 내년에 1.3%로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유럽연합(EU)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충격이 다른 지역보다 크다.
러시아에서 천연가스의 40%를 수입하던 EU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천연가스 가격 급등과 수급 차질에 직면했다.
러시아는 최근 자국에서 발트해를 거쳐 독일 등 유럽으로 가는 노르트스트림1 가스관의 정비를 내세워 가스 공급을 한때 끊기도 했다.
가스 수출을 무기화한 러시아의 공급 중단 가능성이 상존함에 따라 EU는 대체 수입처 확보와 에너지 절약 등에 나섰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러시아가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하면 유로 지역의 경기 침체가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최악의 시나리오에서 유로 지역 경제성장률이 올해 1.3%에 그치고 내년에는 1.7% 역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지난 15일 보고서에서 "천연가스발 경기 침체는 유로존을 포함한 거대 내수시장인 EU 경제에 타격을 주면서 우리 수출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클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국가별 비중(2020년 기준)은 EU(17.0%)가 미국(23.6%), 중국(17.9%)에 이어 크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EU는 중국,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미국에 이어 4위 수출시장이다.
우리나라 무역수지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미 빨간불이 들어왔다.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20일 무역수지는 81억2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원유·가스·석탄의 수입액이 급증한 게 주요인이다.
이에 따라 지난 4월부터 시작된 무역수지 적자가 넉 달 연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3.2%에서 4.5%로 높이고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3.0%에서 2.6%로 낮추는 등 국내 경기에 대한 눈높이는 이미 낮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최근 경제동향(그린북) 7월호'에서 "향후 수출 회복세 제약 등 경기 둔화가 우려된다"며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주요국의 금리 인상 가속화, 중국 성장 둔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으로 국제금융시장 변동성 지속 및 글로벌 경기 하방 위험이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세계 경제의 주름살을 깊게 한 러시아의 경제도 흔들리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그 피해가 서방의 전망보다는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경욱 국제금융센터 부전문위원은 관련 보고서에서 "러시아가 1918년 이후 첫 디폴트(채무불이행)에 빠진 가운데 최근 실물경제 및 금융시장 주요 지표들은 5개월째 지속되는 서방의 제재에도 선방하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1~5월 러시아의 경상수지 흑자가 1천103억 달러로 작년 동기보다 3.5배 증가하고 5월 실업률은 역대 최저치인 3.9%를 기록한 점, 러시아 루블화 가치가 상승한 점을 들었다.
여기에는 원자재 가격 급등, 중국 등 대러 제재 불참국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확대, 러시아 정부의 에너지 대금 루블화 결제와 강력한 자본 통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러시아는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자 2위의 원유 수출국이다. 니켈 등 주요 광물도 생산·수출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서방의 제재에도 러시아의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지만 마이너스 성장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 부전문위원은 "혁심 인력 이탈 등 서방 제재에 따른 부작용이 수년에 걸쳐 러시아의 성장 잠재력을 짓누를 가능성도 상존해 서방 제재의 영향을 온전히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라고 설명했다.
세계경제포럼은 러시아가 예상보다 덜 고통을 받는 것 같지만 생산이 급속히 위축되는 한편 서방 제품 구매는 더 어려워지고 장기적으로 루블화 가치의 회복력은 지속 가능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의 올해 물가상승률은 20%를 웃돌면서 식품비용은 늘어나고 실질임금과 처분가능소득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국민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영국 경제·조사 컨설팅기업인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클라우스 비스테센 수석 유로존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는 분명히 경제적으로 쪼들리고 있다"며 "지금은 할 수 없는 모든 것을 하는 데 익숙한 러시아 중산층에는 특히 그렇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에 말했다.
티모피 밀로바노프 미 피츠버그대 경제학 부교수(전 우크라이나 경제개발장관)는 "러시아는 서방을 시험하고 있고 서방은 동일하게 대응하고 있다"며 양측에 소모전이라고 지적했다.
경제적 피해를 누가 더 버틸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향방을 가를 수 있지만 그 피해가 지구촌 전체로 번지는 만큼 이번 전쟁의 조속한 해결을 촉구하는 것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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