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면 기업·경영
실물도 못보고 車 살판…아이오닉5 전시차 전국에 1대, 왜?
전국 매장중 서울 1곳서만 전시
車 반도체 부족에 출고난 악화
"전시차라도 사겠다" 경쟁 치열
우크라 전쟁·中봉쇄 겹쳐 심화
세종시에 사는 직장인 A씨(남·53)는 전기차 아이오닉5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에 돌아다니는 차 외에 실제로 아이오닉5를 보지 못했다. 집 근처 대리점에 문의했더니 "전시 차는 들여올 계획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A씨는 "서울에서만 아이오닉5가 전시돼 있다고 한다"며 "서울까지 가야 하나 고민"이라고 말했다. 아이오닉5는 전국 700곳에 달하는 현대차 대리점과 지점 중 서울 송파대로점 한 곳에서만 전시 중이다.
차 반도체 품귀 현상으로 차량 출고 적체 현상이 절정에 달하면서 국내 자동차 대리점에서 전시 차가 사라지고 있다. 업계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부품 공급난까지 가중되면서 차량 출고 적체 현상이 최소 내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전국의 현대차 대리점과 지점 775곳 중 아이오닉5를 볼 수 있는 지점은 송파대로점 한 곳뿐이다. 지난해 4월 출시된 아이오닉5는 판매가 본격화한 5월 전국 330여 곳에 전시됐다. 하지만 출고 적체가 심화하자 전시된 지 한 달이 지나서야 전시 차 판매를 시작했다.
이후 아이오닉5 전시 차 10여 대가 대리점과 지점에 공급됐는데, 올 들어 출고 적체가 심해지면서 전시 차가 배정되지 않고 있다.
5월 출고가 시작된 더 뉴 팰리세이드(팰리세이드 부분변경 모델)는 현재 650여 곳에서 전시되고 있는데 이달 말부터 전시 차 판매가 진행된다. 현대차 대리점 관계자는 "팰리세이드는 계약 물량이 많아 지금 계약해도 5~6개월 뒤에나 받을 수 있다"며 "이에 따라 전시 차 구매를 문의하는 전화가 자주 온다"고 전했다. 전시 차는 한 달가량 전시된 뒤 해당 지점에 거주하는 고객을 중심으로 판매된다. 과거 전시 차는 인기가 없어 주로 해당 업체 직원이 사갔지만 이제는 전시 차 구매도 '예약'을 걸어놔야 한다.
기아의 인기 차인 EV6는 전국의 기아 대리점과 지점 670여 곳 중 37곳에서 전시되고 있지만 대부분 판매 계약이 끝났다. 기아 대리점 관계자는 "전시 차가 판매되고 난 뒤에는 EV6 차량 전시 배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차량 출고 적체는 현대차·기아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GM은 전기차 '볼트 EUV' 전시 차를 운영하지 않기로 했다. 한 대라도 더 고객에게 인도하기 위한 방안이다.
차량 출고 기간을 한 달 이내로 유지해왔던 르노코리아자동차도 6월부터는 계약 후 두세 달은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 법정 관리 탈출을 위해 한 대라도 더 팔아야 하는 쌍용차 역시 출고 대기 물량만 1만대가 넘었다. 심지어 최근 2개를 지급하던 스마트키도 반도체 부족에 따라 일부 차종에 한해 1개만 제공하고 있다.
5월을 지나면서 완성차 업체의 출고 적체 현상이 심해진 것은 반도체 부족에 따른 생산 차질에 러시아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불안, 중국 상하이 봉쇄 등 악재가 겹친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중국 업체들이 차 반도체를 미리 구매해 쌓아두는 현상도 발생하면서 공급이 빠듯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세계적인 완성차 업체들의 5월 판매 실적은 전년 동월 대비 크게 줄었다. 특히 완성차 시장의 최대 격전지로 불리는 북미에서 판매량을 공개한 도요타와 현대차·기아, 혼다 등 5개 기업의 실적은 전년 동월보다 38%나 감소했다. 업계는 올해 1~5월 북미 시장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최대 30% 이상 줄어든 250만대에 머물렀을 것으로 추정한다.
르네사스와 인피니언 등 차량용 반도체 제작 업체들이 증설에 나서고 있지만, 실제 생산 능력이 확충되는 시기는 2023년 이후인 만큼 당분간 출고 적체는 이어질 전망이다. 차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내구성이 중요해 이전에 완성차에 공급한 적이 없는 신규 업체가 뛰어들기 어려운 분야다. 기존 업체들이 공장을 증설해도 1년 정도 기간이 필요한 만큼 딱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 말은 돼야 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며 "내년 상반기까지는 지금과 같은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원호섭 기자 / 이새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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