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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비도 빠듯한데…수백만원짜리 냉장고 누가 사겠어요" - 한국경제

인플레發 소비 부진…가전·반도체 직격탄

삼성전자·LG전자 매출 '뚝'
비상회의 열고 대응책 강구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가전과 스마트폰 등의 소비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 서울의 한 가전 매장이 여름 성수기를 맞았는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김범준 기자

인플레이션으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가전과 스마트폰 등의 소비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22일 서울의 한 가전 매장이 여름 성수기를 맞았는데도 한산한 모습이다. /김범준 기자

인플레이션발(發) 소비 부진이 현실화하고 있다. 원자재·유가 급등으로 물가가 급격히 오르면서 소비자 지갑이 굳게 닫히는 양상이다. 가전과 스마트폰 등 코로나19 기간 ‘보복소비’의 수혜를 봤던 기업들이 코로나19 엔데믹의 격랑도 가장 먼저 맞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의 2분기 가전·TV 부문 매출이 세계 주요 지역별로 10% 이상 감소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를 직접 받은 유럽 지역 등은 매출 감소폭이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롯데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오프라인 가전판매점의 2분기 가전제품 판매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가전유통업체 대표는 “6월은 에어컨 판매 성수기인데 이달 판매량은 작년보다 20%가량 줄었다”며 “벌써부터 재고 관리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판매 부진은 물가 급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지난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4%로, 2008년 7월(5.9%) 후 최고점을 찍었다. 지난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임금이 오르긴 했지만 물가 급등으로 소비 여력은 되레 줄었다.

가전과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기기 출하량이 감소하면서 반도체 수요도 줄어들 것이란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3분기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이 2분기보다 각각 3~8%, 0~5%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가전·반도체 기업들은 비상 대응 태세에 들어갔다. 구광모 LG 회장은 23일 계열사 사장단과 회의를 하고 최근 경영환경 악화에 따른 대응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도 지난 21일 한종희 부회장 등 본사 경영진과 해외 법인장 등 240여 명이 참석한 상반기 글로벌 전략회의를 열었다.

제조업체 '직격탄'
기업들 인건비 부담까지 급증…비용절감 쉽지 않아 고민
“물가 급등으로 생활비도 빠듯한데 수백만원짜리 가전제품을 소비자들이 어떻게 사겠습니까.”

22일 만난 한 가전업체 임원은 이같이 토로했다. 국내외 매출 급감으로 여러 차례 회의를 소집했지만 내부에서도 이렇다 할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선 프리미엄 제품을 중심으로 한 판매 전략도 해결책이 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펜트업 소비로 급증했던 교체 수요가 이제 끝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어서다. 올해 10% 안팎 임금을 올리면서 인건비 부담도 커진 상태여서 가전·반도체 업체에 대한 실적 전망치 하향 조정이 잇따르고 있다.

국내외 판매 부진 이중고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비롯해 위니아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은 전 세계 소비 부진에 따른 실적 감소로 컨틴전시 플랜 마련에 나섰다. 올 2분기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지역과 중남미 국가에선 매출이 10% 안팎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상황은 더 심각하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각종 원자재 및 유가가 급등하면서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됐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유럽 지역은 매출 감소 폭이 30%에 이른다”고 말했다.

국내 사정도 만만치 않다. 롯데하이마트, 전자랜드 등 오프라인 가전 양판점의 고가 가전제품 판매가 부진하다. 지난 5월까지 전자랜드 TV 판매량은 10% 이상 줄었고 냉장고는 한 자릿수 감소세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코로나19 동안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전제품을 교체한 소비자가 많은 데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소비 여력이 줄어든 영향이다. 대형가전의 소비 주기가 약 10년으로 길다는 점을 고려하면 소비 심리가 쉽사리 살아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물가가 너무 오르다 보니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다”며 “실질소득까지 줄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가전 제품 판매 부진은 이미 지난 1분기 양판점 실적에 나타났다. 롯데하이마트의 올 1분기 매출은 84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줄었다. 이는 82억원 영업이익 손실로 이어졌다.

소비 부진, 반도체까지 영향
가전을 중심으로 한 전자·정보기술(IT) 기기 부문 수요 부진은 반도체 업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올해 3분기 D램 가격이 전분기보다 평균 3~8%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낸드플래시는 같은 기간 0~5% 내려갈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위축되고, 인플레이션 우려가 확산하면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규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하반기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PC와 모바일 등 IT 완제품의 부진이 예상된다”며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의 주요 거래처인 전자·부품 업체들은 수요 위축을 예상하고 제품 생산량을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리서치는 올해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을 13억5700만 대로 내다봤다. 지난해보다 3500만 대 줄어든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연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도 이달 들어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경기 침체 장기화로 반도체뿐 아니라 스마트폰, 가전제품 판매가 부진할 것이란 전망 때문이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는 5월 말 63조5904억원에서 지난 21일 62조2077억원으로 꺾였다. LG전자도 같은 기간 4조7901억원에서 4조7507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박신영/박의명/이미경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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