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통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특혜론부터 산업은행 책임론까지 여러 쟁점이 제기되는 가운데, 산은이 연내 통합을 위해 속도를 높이는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지난 25일 진행된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의 한진칼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소송 심문에서의 양쪽 변론, 산은의 기자간담회, 아시아나 노조 성명서 등을 종합해 그간의 쟁점을 정리했다.
가장 큰 논란은 산은→한진칼→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자금 구조다. 산은은 한진칼의 8천억원 규모 제3자 유상증자에 참여해 한진칼 지분을 획득하고 이 가운데 7300억원을 한진칼을 통해 대한항공의 2조5천억원 유상증자에 투입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산은이 한진칼 지분 약 10%를 가지게 되고, 조원태 회장과 한진칼 주주연합(KCGI·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반도건설) 사이의 경영권 다툼에 개입해 주요 안건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산은이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위해 조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맡았다는 의심을 받는 이유다. 케이씨지아이는 주주연합을 대표해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주주배정 유상증자로 바꾸라고 요구하고, 경제개혁연대는 한진칼이 아닌 대한항공에 유상증자해 이런 오해를 해소하라고 제안했지만 산은은 둘 다 거절했다. 주주 배정 유상증자는 시간이 2개월 이상 소요되고, 대한항공 유상증자는 한진칼의 대한항공 지분율을 지주사 요건(상장 자회사 지분 20% 이상) 아래로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경제개혁연대가 재차 교환사채를 활용해 지주사 요건을 유지하는 대한항공 유상증자안도 제안했지만 산은은 이 역시 ‘채권자가 아닌 주주로 참여해야 한다’며 거절했다.
산은은 대신 조원태 회장을 압박할 장치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산은과 한진칼 사이에 맺은 이른바 ‘7대 의무’가 그것이다. 조 회장이 의무사항과 확약 내용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경영에서 퇴진하고 5천억원을 위약벌로 내는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누구도 편 들지 않는 중립적 위치에 서서 어느 쪽도 일방적으로 지원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적지 않다. 케이씨지아이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소송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제50민사부는 지난 25일 심문에서 “산은이 중립적으로 할 거라고 하지만 산은이 이 거래를 유지해야 하는 위치에 있지 않나. 산은이 어쩔 수 없이 채무자 경영진 쪽에 유리하게 행사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한진칼에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한진칼은 “(경영진 교체) 협약에 구속력이 있다”고 답했다.
쟁점② 아시아나항공은 대한항공에 독인가 약인가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독일까, 약일까. 산은은 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시아나항공이 보유한 인천공항의 노선 사용 권리(슬롯), 리스 항공기 등을 대한항공이 가져와 외형을 키울 수 있고 국내의 유일한 대형항공사(FSC)로서 독보적 시장 위치도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경영진인 조 회장도 자신의 자리를 걸고 두 항공사를 살려야 하는 처지다. 반대로 케이씨지아이가 강조하는 건 아시아나항공의 부채다. 올해 3분기 기준 아시아나항공 부채는 12조8386억원, 부채와 자본의 비율(부채비율)은 2308.71%다. 올해 누적 당기순손실이 6238억원으로 부채를 갚을 여력이 안 된다. 코로나19로 당분간 국제 여객 매출은 기대하기 어렵다. 케이씨지아이가 아시아나항공 인수 검토에 더 오랜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한진칼과 총 8천억원 규모의 투자계약을 체결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 추진을 결정한 지난 16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항공 빌딩 앞에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만약 아시아나항공 인수로 대한항공이 동반 부실에 빠질 경우 대한항공 경영진에 대한 배임 논란도 일어날 수 있다. 한때 아시아나 인수를 희망했던 현대산업개발은 1년 반 실사 끝에 매각가 1조5천억원에도 결국 인수를 포기했다.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는 1조8천억원이다. 산은이 국내 5대 그룹사 등에 인수를 타진했지만 모두 부채 부담 등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케이씨지아이는 지난 25일 법정에서 이런 기업을 시장가보다 높게 주고 샀다며 ‘회사에 대한 배임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진칼은 이에 대해 “1조8천억원 가운데 3천억원은 영구채여서 아시아나항공 경영이 정상화되면 돈으로 받을 수 있다. 실제 인수가격은 1조5천억원”이라고 주장했다.
산은은 왜 이런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서두를까. 산은이 내세운 이유는 ‘비용 최소화’ 원칙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9월 현대산업개발과의 인수 계약이 파기된 뒤 신용평가사들의 ‘BBB-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다. 다음 평가일 전에 자본잠식을 해소하지 못하면 투기등급인 BB+로 강등될 가능성이 높다. 통상 기업의 채무 계약엔 ‘투기등급이 되면 자금을 조기 회수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회사채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자산유동화증권(ABS) 4500억원 등 채무에 대해 조기 상환 요청이 들어올 수 있다. 산은은 지난해와 올해 3조3천억원을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했다.
아시아나와 대한항공의 항공기. 위키미디어 커먼스
당시 아시아나항공을 하향 검토 리스트에 올린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산업개발의 매각 무산으로 신규 대주주의 유상증자와 유사시 지원 가능성 등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며 “앞으로의 영업실적과 채권단 자본확충 계획 등을 검토해 충분한 규모의 자본 확충이 적시에 이뤄지지 않을 경우 신용등급 하향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산은이 새 인수자를 구해 이런 시장 우려를 일부분 해소하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딜이 무산되면 (아시아나의) 연내 파산을 피할 수 없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산은이 기간산업안정기금 2조4천억원을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하기로 결정한 만큼 이런 우려는 과도하다는 시각도 있다. 아시아나항공 노조는 25일 성명서를 내어 “아시아나항공이 기업안정자금을 3년 내 상환하는 조건인데도 산은은 당장 매각이 안 되면 파산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며 “정부의 항공산업 정책실패를 덮으려고 대한항공에 파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국기업평가도 지난 23일 발간한 대한항공 평가보고서를 통해 “아시아나항공의 기안 기금 승인액과 인수 과정에서의 증자 등으로 당분간 (아시아나에 대한) 추가 자금 지원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쟁점④ 산은과 박삼구 회장, 책임져야 할 부분 없나
아시아나의 파산 가능성이 거론되자 산은 ‘책임론’도 다시 떠올랐다. 산은이 채권단을 맡은 게 지난 2018년인데 아시아나항공이 올해 투기등급 강등 위기에 이를 때까지 무엇을 했냐는 비판이다. 이한상 고려대 교수(경영학)는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미 채권시장에서 아시아나 회사채가 무보증, 무담보로 소화가 안 된 지 3년이 넘었는데도 산업은행은 차입금과 영구채로 땜질 처방했다”며 “박삼구 회장 쪽에 경영 책임을 묻고 차등감자와 지분 전환 등으로 구조조정을 했어야 하는데 이를 하지 않다가 이제 와 항공산업을 재편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썼다. 그는 (아시아나를) “민간 자율로 구조조정한 후 자연스럽게 합병하거나 재무구조를 인수할 수 있는 수준으로 건실화한 뒤 넘기는 게 상식”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창립 이래 경영 실적이 좋았던 때가 많지 않다. 2000년 이후 흑자와 적자를 오가다 2010년 채권단 관리 체제 하에 들어갔고, 2014년 이를 졸업한 뒤에도 이듬해 적자를 내며 수렁에 빠졌다. 2016년과 2017년 당기순이익을 냈지만 2018년과 2019년엔 다시 적자로 돌아서 채권단 관리를 받았다. 유동성 위기 때마다 돈을 빌린 탓에 부채비율은 2005년 320%, 2010년 484%, 2015년 991%, 2019년 1386%로 늘어갔다. 여기에 코로나19까지 겹치자 부채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지난 8월엔 아시아나항공이 금호고속을 부당 지원한 혐의까지 공정위 조사로 드러나 비난 여론이 더욱 거세졌고, 부실 경영 책임이 있는 박삼구 회장이 사재출연 등 재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와 관련해 산은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이 이미 경영에서 퇴진했고 보유 주식도 담보로 제공한 상태라 추가 조치는 계획된 바 없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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