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올해도 물가 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하겠다고 밝혔으나, 시장에선 기준금리 동결 기대감이 계속 커지고 있다.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상승률은 3%대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는 반면, 경제 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더 안 좋을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최근 비둘기파적(통화완화 선호)인 발언을 쏟아 내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을 보탰다.
이 총재는 지난 13일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방향 회의 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일각의 통화정책 완화 전망에 대해 "금리를 지금부터 동결한다고 해석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며 "물가 상승률이 1~2월 5% 수준이고, 그래서 당분간 물가 중심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은이 사상 처음으로 7회 연속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데다, 이 총재도 물가안정을 재차 강조한 만큼 지속적인 금리인상 시그널로 읽힐 수 있는 상황이지만, 시장에선 이후 오히려 금리동결 전망이 확산했다.
김지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금통위 직후 "향후 기준금리 경로는 인상보다는 동결 가능성이 높다"며 "1월 금통위에서 가장 특징적인 변화는 '성장 위험'에 대해 진지해졌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지난해 11월 경제전망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했음에도 이번에 추가적인 하향을 시사했고, 통화정책방향문에서도 향후 금리 결정에 고려해야할 점으로 성장 위험과 금융 안정 리스크를 물가보다 먼저 기술한 만큼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뜻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중 3명은 3.5%에서 동결을, 나머지 3명은 3.75%까지 인상할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의견을 냈다고 말했지만 3.75% 의견을 낸 위원의 경우 반드시 인상하자는 것 보다는 상황에 따라 인상하는 것을 배제하지 말자는 입장에 가깝기 때문에 매파적으로 해석하긴 힘들다는 분석이다. 특히 통방문에서 기존의 '당분간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라는 문구가 '긴축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로 수정된 것도 다음달 금리동결 전망에 힘을 실었다.
물가도 다소 안정세를 찾고 있다. 한은이 지난 20일 발표한 생산자물가지수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는 전월보다 0.3% 하락했다. 11월(-0.3%) 이후 2개월 연속 내림세다. 공산품 중 석탄·석유제품(-8.1%), 컴퓨터·전자·광학기기(-1.2%) 등의 하락 폭이 특히 컸다. 지난해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국제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하락 흐름을 보이는 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물가지수 역시 지난해 7월(6.3%)을 기점으로 상승폭이 다소 둔화되는 모습이다.
이 총재도 최근 외신기자들과 만나 "지난해에는 물가상승률이 5%를 넘었고 또 가속화가 됐기 때문에 경기나 부동산 시장의 부정적 영향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 게 우선순위였다"면서도 "지금은 이미 금리가 높은 수준에 있으니 이것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는 시장에서 금리인상보다는 금리동결에 가까운 발언으로 해석됐다.
만약 다음달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상을 둘러싼 금통위원들의 의견이 3대 3으로 나뉠 경우 이 총재가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는데, 이 총재가 사실상 비둘기파적 발언을 내놓은 만큼 동결이 더욱 유력해졌다는 의미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날 이 총재의 발언을 '도비쉬(비둘기파적)'라고 평가하면서 "향후 물가 흐름이 현재의 전망대로 안정이 도모될 경우 통화정책 방향은 완화로 바뀔 거란 시장의 기대가 마냥 틀린 것은 아니라는 시각을 드러낸 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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