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구찌가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냈다. 지난 2012년 리뉴얼 오픈한 청담동 플래그십 스토어에 이어 국내선 두 번째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데다, 강북지역 최초의 플래그십 매장인 만큼 공을 들였다.
29일 구찌의 국내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 '구찌 가옥'이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문을 연다. 내부는 활기찬 팝 스타일로 꾸며졌다. 사진 구찌
지상 1층부터 4층까지 1015㎡(약 307평) 매장은 온통 ‘한국적인 것’으로 가득 차 있다. 이름부터 ‘구찌 가옥(GAOK·家屋)’이다. 그동안 도시나 거리 이름으로 매장 이름을 짓는 경우는 많았지만, 한 나라의 전통 주거 형태의 명칭을 이름으로 삼은 것은 구찌 역사상 최초다. 구찌 관계자는 “한국의 ‘집’이 주는 고유한 환대 문화를 담아 방문객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가옥(GAOK)' 글씨가 새겨진 여행 가방 및 가죽 소품 등으로 꾸며진 1층 전경. 사진 연합뉴스
1층 매장에 들어서면 계단 옆 오른쪽 화면 가득 디지털 고사상이 눈에 띈다. 주로 개업식에 사업 번창을 위해 고사상을 차리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반영한 것이다. 방문객이 화면을 터치해 자신만의 상을 차려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재미 요소를 담았다. 디지털 고사상이지만 상차림은 한국의 전통을 제대로 구현했다. ‘홍동백서’의 원칙에 따라 배열할 수 있도록 돼지머리와 과일·약과·생선 등이 준비되어 있고, 그릇에 담긴 과일도 격식에 맞게 홀수로 담겨있다.
구찌 가옥 매장 안에 한국 전통 고사상을 디지털로 재현해 놨다. 화면을 터치해 자신만의 고사상을 차려볼 수 있다. 사진 구찌
구찌 가옥의 건물 외부 입면(파사드) 디자인은 한국의 박승모 작가와 협업했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는 주요 매장을 낼 때 주로 외국의 건축가나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경우가 많다. 박승모 작가는 알루미늄 선을 여러 겹 중첩해 풍경이나 형상을 표현하는 국내 대표 금속조형 작가다. 이번 구찌 가옥에선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의 형상을 표현했다. 매장 4층에도 커다란 미디어 아트 월이 자리해 박승모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외관 및 4층에는 한국의 조각가 박승모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 구찌
매장에는 구찌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제품도 즐비하다. 그중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전통 문양인 ‘색동’에서 영감을 받은 상품들이다. 색동저고리를 연상시키는 패턴에 구찌의 상징적인 문양이 혼합된 형태로 지갑과 가방·모자·스니커즈 등 액세서리와 재킷 등에 수 놓여 있다.
색동저고리를 떠올리게하는 전통 문양에 구찌 로고를 더했다. 사진 연합뉴스
가옥에서 판매되는 제품에는 다른 매장에서는 볼 수 없는 전용 쇼핑백이 제공된다. 보다 특별한 포장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전통 포장법인 보자기와 노리개 포장이 제공된다. 붉은색 보자기를 활용해 박스 포장을 한 뒤 전용 쇼핑백에 노리개가 장식으로 달리는 형태다.
전통 포장법인 보자기와 노래기를 활용한 특별 포장 서비스. 유지연 기자
동양적 디자인 요소를 가미한 테이블웨어 컬렉션 '허베리움.' 사진 연합뉴스
한국 전통문화를 세심하게 반영한 것 외에도 구찌 가옥에서만 볼 수 있는 독점 제품은 또 다른 볼거리다. 전 세계에 단 한 점밖에 없는 1억원 대의 주얼리 세트가 국내 매장 최초로 전시되는가 하면 전 세계에 디자인도 사이즈도 단 한 제품만 제작되는 ‘구찌 유니쿰(unicum)’라인도 남성·여성 합해 17벌 소개된다. 그동안 국내선 온라인 주문만 할 수 있었던 그릇이나 컵 등 테이블웨어도 직접 보고 구매할 수 있다. 소파·테이블 등의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등을 선보이는 라이프 스타일 컬렉션 ‘구찌 데코’도 다양하게 갖춰 놨다.
국내서 최초로 선보이는 프리미엄 파인 주얼리 라인들. 사진 연합뉴스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D)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문화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구찌 가옥은 그의 이런 철학을 구현한 공간으로 보인다. 또한 글로벌 럭셔리 기업의 현지화 전략이 얼마나 고도화되어 가고 있는지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아시아 시장 공략을 위해 명품 브랜드가 아시아 모델을 활용하거나, 아시아 아티스트와 협업해 독점 컬렉션을 내는 등의 시도는 많았지만, 매장 전체에 현지 전통문화 요소를 반영하는 방식은 이례적이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로 전 세계 명품 시장이 휘청였던 가운데 폭발적 성장세를 이어온 한국 시장의 파워를 반영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유통업계에서는 구찌코리아의 지난해 매출을 약 1조원 안팎으로 예상한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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