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가 인상에 납품가 통제…“타 제품 팔지 말라”
일방적 평가 조항 담은 6개월짜리 계약서 강요
변호사 “공정거래법·대리점법 위반 소지” 비판
지평주조에서 생산하는 막걸리 제품. 지평주조 누리집 갈무리
엠제트(MZ)세대에게 막걸리가 ‘힙한 술’로 자리매김하는데 앞장서며 해마다 매출 급성장을 이어온 ‘지평주조’가 대리점주들에게 다른 업체 술을 팔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부당 계약서를 강요하는 등 ‘갑질’을 일삼아 새해 벽두부터 입길에 오르고 있다. 대리점주들이 “본사와 대리점이 상호 윈윈하는 상생형 모델 구축을 강조했던 지평 막걸리가 ‘갑질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경기도 양평 지역에서 출발한 지평주조는 ‘지평 생쌀막걸리’ ‘지평 일구이오’ 등의 제품을 판매하는 회사로, ‘프리미엄 막걸리 트렌드’를 주도하며 기록적인 성장세를 이어왔다. 김기환 현 대표 취임 첫해인 2010년 2억원에 그쳤던 매출이 2015년엔 45억원, 2017년엔 110억원, 2019년엔 230억, 2021년엔 405억원을 각각 돌파하며, 수도권에서는 서울장수의 뒤를 이어 국순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2~3위권까지 올라섰다. 2일 지평주조 대리점주들과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근 지평주조는 대리점주들과 2023년도 물품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기존 1년이던 계약기간을 6개월로 일방적으로 줄였다. 또 대리점 평가라는 새로운 조항을 도입해 ‘직전 계약기간 중 이뤄진 평가결과를 포함해 1년 이내에 3회 이상 디(D)등급 이하를 받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삽입했다. 대리점주들은 지평 본사가 갑자기 계약기간을 6개월로 줄이고, 기준도 불명확한 대리점 평가 조항을 도입한 것은 본사의 불합리한 요구를 따르지 않는 대리점주들을 솎아내기 위한 조처라고 비판한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수도권 대리점주 ㄱ씨는 “막걸리를 보관할 창고, 이를 운반할 차량, 영업을 담당하는 직원을 유지해야만 하는 대리점의 처지에서 6개월 안에 계약이 해지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본사가 요구하는 모든 조건을 들어줘야만 한다”고 호소했다. 대리점주들이 2023년 신규 계약서의 내용에 반발하는 이유는 2021년 6월께부터 지평주조 본사 쪽이 지속적인 갑질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지평주조 본사는 2021년 6월 ‘7월14일부터 막걸리 공장 출고가를 750㎖는 병당 50원씩, 1.7ℓ는 80원씩 인상한다’고 통보한 뒤 ‘도매점에서 슈퍼·식자재 마트·식당 등에 납품하는 단가는 동결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같은 해 말에도 ‘2022년 1월1일부터 750㎖는 병당 70원, 1.7ℓ는 80원씩 인상한다’고 고지한 뒤 ‘거래처에 납품할 때 마트는 소비자가 2천원, 업소(식당)는 4천원에 맞출 수 있도록 가격을 동결하라’고 요구했다. 다른 대리점주 ㄴ씨는 “출고가는 계속해서 올리면서 대리점의 거래처 납품가를 동결하면서 대리점주들이 한 달에 수백만원대의 손실을 봤지만, 신규 계약이 다가오니 꼼짝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지평주조 제공
뿐만 아니다. 지평주조는 지난해 9월부터는 영업사원을 통해 대리점주들에게 ‘지평주조 막걸리 외에 다른 제품은 취급하지 말라’ ‘국순당 생막걸리 제품을 계속 취급하는 대리점엔 출고가를 병당 150원씩 인상하겠다’는 압박을 계속해왔다. 또다른 대리점주 ㄷ씨는 “지평주조 대리점의 경우, 대부분 7:3이나 8:2 정도의 비율로 지평 막걸리와 다른 회사의 막걸리를 함께 취급하고 있는데, 이는 거래처가 다양한 막걸리를 요구하기 때문”이라며 “다른 회사의 술을 취급하지 말라는 것은 대리점주들에게 수익의 20~30%를 포기하라는 뜻이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지평주조가 갑자기 대리점주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나선 것은 빠르면 이달 완공될 천안공장에서 생산될 물량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막걸리 업계 한 관계자는 “지평주조의 천안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춘천 1·2공장에서 생산되는 물량의 4배 이상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며 “막걸리 시장에 관한 면밀한 분석 없이 대규모 공장을 신설하는 무리수를 두고 물량 밀어내기를 하기 위해 대리점주 길들이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지평주조의 이런 갑질에 수도권 30여개 대리점 가운데 18곳이 연합회를 꾸려 대응에 나섰으나, 연합회 탈퇴를 종용하는 본사의 압박과 생업에 대한 불안감으로 결국 대부분이 새로운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점주 ㄹ씨는 “본사가 연합회를 탈퇴하고 다른 회사의 제품을 받지 말라는 요구를 공공연하게 했다”며 “12월31일까지였던 계약 만료 시한이 다가오면서 불안감에 휩싸여 날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계약 연장을 거부당한 대리점주 등 일부는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으며, 신규 계약 조건을 거부한 또 다른 대리점주는 ‘불공정 약관 심사’를 청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무법인 동헌의 권정순 변호사는 “6개월 단위 계약은 경영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이례적인 단기 계약으로, ‘을’(대리점주)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으로 보인다”며 “이런 단기계약과 평가조항을 악용해 ‘갑’(본사)이 ‘을’을 마음대로 통제하거나 계약해지를 할 것이라고 충분히 의심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납품가를 통제하거나 다른 회사의 막걸리를 팔지 못하도록 종용한 행위 역시 공정거래법 위반”이며 “특별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한 것은 대리점법 위반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지평주조 본사 쪽은 “계약기간을 6개월로 줄인 것은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물품 공급 계약서를 다시 쓸 수 없으니 계약기간을 나눠서 진행하고자 한 것”이라며 “평가제도 도입은 회사 성장에 맞춰 체계적인 관리를 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일부 영업사원이 지평 막걸리 판매에 더 신경을 써 달라는 취지로 요청을 했을 뿐, 타사 제품을 팔지 말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다”라며 “출고가를 인상하면서 거래처 납품가 동결을 한 것은 대리점과 상의 하에 응하는 곳만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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