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어려운 게 문제
'아니면 말고' 돈 풀기 말고
세대·계층 간 적대감 씻어낼
정직한 일자리정책·제도 시급
이학영 상임논설고문
조직과 정보, 자금조달 능력에서 개인에 비할 수 없이 막강한 기관투자가들이 맥없이 당하는 일이 ‘실화(實話)’로 벌어지자 월가가 뒤집어졌다. 공매도 전문가 짐 차노스는 ‘증시의 탈선 사태’라고 개탄했지만 ‘다윗이 골리앗과 맞서 이긴 것’ ‘개미군단(armies)이 월가의 늑대들을 사냥한 고급 금융드라마’ 등의 환호와 감탄이 쏟아졌다. 여러 비유 가운데 “사람이 개를 물었다”(홀먼 젠킨스 월스트리트저널 칼럼니스트)는 게 가장 눈길을 끈다.
2008년 전 세계 증권시장은 물론 실물경제까지 고꾸라뜨린 뉴욕발(發) 금융위기는 수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고통을 줬다. 주식투자자들의 돈만 날아간 게 아니다. 기업들이 줄줄이 파산위기에 몰리면서 숱한 사람들이 졸지에 일자리를 잃는 날벼락을 맞았다. 그런데도 ‘위기 주범’ 월가 금융회사 대부분이 마땅한 벌을 받기는커녕 구제금융을 받아 살아났다. 증시가 안정을 되찾은 뒤에는 월가 경영자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받기까지 했다. 참다못한 사람들이 들고일어난 게 2011년의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였지만 월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를 악문 사람들에게 월가 집단은 더더욱 ‘탐욕’의 상징이 됐지만, 금융회사들만 그런 게 아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의 또 다른 채팅방에는 실적 악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너럴일렉트릭(GE) 경영진의 탐욕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GE가 최고경영자인 래리 컬프에게 회사 주가가 10달러를 넘으면 4700만달러(약 517억원)의 특별보너스를 주기로 했다. 우리가 힘을 모아 막아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계층 간 격차 확대까지 겹치면서 ‘잘 먹고 잘 사는’ 집단에 대한 개인들의 분노가 끓어올라온 터다. ‘게임스톱 사태’는 일반인들의 그런 반발이 어느 정도로 커지고 있는지를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개인들의 반란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게 문제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사설에서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멈출 것”이라는 ‘허버트 스타인의 법칙’을 들어가며 일깨웠듯이, 오프라인 게임 판매회사가 135억달러의 시가총액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게임스톱 주가가 제자리를 찾는 과정에서 매도 시점을 놓쳐 손실을 입는 개인투자자가 적지 않을 것이고, 개인들의 월가에 대한 적대감이 더 커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악당들에게 한 방을 먹여 속 시원하다”는 들뜬 기분을 딛고 짚어봐야 할 게 있다. 헤지펀드와 공매도투자자들이 악당일 뿐인가 하는 것이다. 각종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투자가 주류를 이루는 증권시장에서 헤지펀드와 공매도투자자들이 상장기업의 실적을 파고들어 투명성을 높이고, 적정한 주가를 찾도록 한다는 사실에 눈 감아선 곤란하다. 작년 6월 독일을 대표하던 핀테크기업 와이어카드의 회계부정을 들춰내 투자자들을 더 큰 피해로부터 막아낸 주역도 헤지펀드였다.
한국에서도 큰 공명(共鳴)을 일으키고 있는 ‘게임스톱 사태’의 메시지를 정부 당국자와 정치인들은 무겁고 깊게 받아들여야 한다. 코로나 사태 이전부터 지속돼 온 초(超)저금리와 잔뜩 풀린 돈으로 인한 시장경제 왜곡이 심각하다. ‘코로나 거리두기’로 카지노는 물론 술집도 갈 수 없게 된 젊은 세대가 주식투자 앱에 몰려들어 ‘룰렛게임’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무엇보다도 일자리에서 내몰리고 소외된 사람들의 절망이 커지고 있다. ‘아니면 말고’ 식 돈 풀기가 아니라 경제가 활력을 되찾게 할 정직한 돌파구가 시급하다.
haky@hankyu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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