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업계 "서울시장 선거 보고 판단해도 늦지않아"
여당 패배시 후속 입법일정 ‘불투명’…절차 늦어질 듯
野 서울시장 당선시에는 사업 추진 거부권 행사 가능성도
지난달 31일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 후보지 21곳이 발표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주도하는 정비사업으로 서울 도심에서 32만호 이상 공급한다는 큰 꿈을 담은 2·4 공급대책의 첫 출발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오는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시작으로, 향후 예정된 정치 일정에 따라 후보지 발표 외에는 후속조치 일정을 기약하기 힘든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3일 국토부 등에 따르면,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 첫 선도사업 후보지로 영등포구 영등포역 인근, 도봉구 창동 준공업지역, 은평구 불광동 저층 빌라단지 등 21곳이 선정됐다. 이 사업은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빌라촌 등 저층 주거단지에서 LH 등 공공기관이 주도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얻어 고밀 개발하는 사업이다. 이들 지역에서 사업이 차질 없이 추진되면 판교 신도시 규모인 2만5000여호의 주택이 공급된다.
이같은 계획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관련 근거를 담은 공공주택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야 한다. 정부가 첫 예정지구 지정 시점을 7월로 발표한 이유는 공공주택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해 공포된 뒤 3개월이 지나야 시행되기 때문이다.
◇2·4공급대책 관련법 처리해야하는데···선거후 ‘원내 리더십’ 붕괴 가능성
그러나 국회가 2·4대책 근거 법률안을 처리할 시점을 예측하기는 힘들다. 일단 국회는 오는 7일 보궐선거 전까지는 공전이 불가피하다. 여야가 총력을 기울여 선거전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 후에도 곧바로 국회가 열린다고 낙관할 수 없다.
현재 여론조사 흐름대로 선거 결과가 나오면 여당 내에서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되고 ‘지도부 총사퇴’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원내 리더십 자체가 붕괴하면서 당분간 국토교통위원회나 본회의 등 국회 일정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새 대표를 뻡는 5월 전당대회까지 정상적인 원내 일정이 어려울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국토부가 ‘주택공급 브리핑’을 매주 정례적으로 실시하고 2·4 공급대책 선도사업 후보지를 발표하고 있지만, 보궐선거를 앞두고 ‘부동산 정책 후퇴는 없다’는 신호를 주기 위한 ‘허장성세’라는 분석도 나온다.
선거 후에는 청와대가 예고한 국토부 장관 교체도 기다리고 있다. 개각은 곧 수주간의 ‘청문회 정국’으로 이어진다. 새 국토부 장관의 적절성을 논의하면서, 물러날 변창흠 현 장관이 마련한 정책을 국회가 강행 처리한다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다. 결국 관건은 이번 선거 결과다. 여당이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4 공급대책의 ‘단독 처리’를 강행하려면, 그 만큼의 정치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 보궐선거 결과를 통해 보여야 한다.
◇LH 못믿는데 후보지와 함께 ‘현금청산’ 대상자도 구체화
이같은 입법 절차를 계획한 일정대로 마친다고 하더라도, 토지 등 소유주의 사업 동의를 확보하는 것은 또다른 난제다.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우선 토지주 등의 10%의 동의를 얻어 ‘예정지구’로 지정돼야 하고, 그 이후에는 다시 1년 내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 본지구로 확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1년 이내에 토지주 등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지 못하면 사업은 자동으로 취소된다.
그러나 LH라는 사업 시행자의 신뢰가 ‘직원 땅투기 논란’으로 치명타를 입으면서 1년내 토지주 등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애초 주요 사업 대상지인 ‘역세권’의 경우는 주택 소유자와 상가건물 소유자의 이해관계가 달라 추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상황에서, 새로운 부담을 더하게 된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1차 선도구역에서 역세권은 9개 구역 7200호 수준에 이른다. 절반 가까운 사업이 ‘상권’ 리스크라는 난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후보지가 드러나지 않아 잠복했던 ‘현금청산’ 대상이 된 소유주들의 반발도 가시화될 수도 있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이번에 발표된 선도지구로 발표된 도봉구 쌍문역 서측, 영등포 영등포역 인근, 영등포 옛 신길15구역 등에서 2·4 대책 공개 후 거래된 연립·다세대주택이 있었다. 사유재산 침해 논란이 추상적 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가 있는 구체적 법적 다툼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 ‘인허가권자’ 서울시장 바뀌면, 2·4대책 멈출 수도
서울시장, 대통령 등 정비사업 관련 규제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행정 리더십이 교체를 앞둔 점도 중요한 복병이다. 서울시장은 도심 정비사업에서 사실상 최종 결재권자다. 국토부 장관이 큰 그림은 그려도 구체적 사업에 대한 인허가권은 지자체장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 사업 계획에 따르면, 예정지구로 지정된 뒤에는 국토부와 지자체가 함께 사업계획을 검토하는 ‘사전검토위원회’ 논의를 거치게 된다. 사업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장치다. 그런데 새 시장의 성향에 따라 사전검토위 논의가 사업기간을 줄이는 ‘패스트트랙’이 아닌 사업기간을 늘리는 ‘병목’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새 시장이 민간 정비사업 관련 규제를 완화할 경우에는 2·4 공급대책의 LH 중심의 정비사업의 매력이 빛을 잃을 수 있다. 재건축초과이익부담금이 없어진다면 그를 면제해주겠다는 ‘당근’의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서울시장 선거의 경우 여야를 가리지 않고 주요 후보들이 민간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를 공약하고 있다.
첫 선도지구가 본지구로 확정하기 전에 새 대통령 당선자가 드러나거나, 이미 임기를 시작하게 된다는 점도 난관이다. 이에 따라 상당수의 토지주 등이 대선 결과를 보고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정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민간이 주도하는 정비사업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정책을 내세운 정부가 들어서면, 일부 예정구역은 더 큰 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다.
오는 7월 국토부와 지자체 바램대로 예정지구가 지정된다고 하면 사업 추진을 위해 토지주 등이 동의 의사를 밝혀야 하는 시한은 내년 7월까지다. 토지주 등의 상당수가 ‘1년’이라는 시한을 최대한 활용해 대선 결과를 다 보고 판단하려고 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정비업계 관계자는 "모두 서울시장 선거 이후의 정치권 판세만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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