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백신은 전시 군수품
지구촌, 백신 격차 해소가 과제
게임 체인저는 신속한 백신 증산
특허, 기술이전 특례조치 필요
팬데믹 위기는 몇몇 국가의 집단면역으로 극복될 수가 없다. 글로벌 이슈이므로 국제협력으로 풀어야 한다. 2000년 설립된 세계백신면역연합(GAVI) 등이 저개발국 백신 보급에 나서고 있으나 이번 백신 격차 해소에는 역부족이다. 미국이 3차 접종 카드를 검토하고 있다니 물량은 더 딸리게 생겼다. 시장경제 중심의 경제학을 고수하는 한 지구촌의 집단면역 달성은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그 사이 전파가 더 빠르고 백신을 무력화시키는 변종들이 공격할 확률이 계속 커진다.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게임 체인저는 신속한 백신 증산이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백신은 전시(戰時) 군수품격이기 때문이다.
최근 고든 브라운, 미하일 고르바초프, 조셉 스티글리츠 등 175명이 미국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다. 백신 접종을 못 받는 국가가 다수인 한 세계경제는 재건될 수 없으므로 코로나 백신 특허 효력을 한시적으로 중단시켜 기술을 공유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특허권은 존중되어 마땅하다. 그러나 공공 목적을 위해 막대한 공적 자금과 특별대책으로 개발된 백신의 수급 차질로 전투에서 질 수는 없는 일이다.
2020년 백신 개발에서 이미 특허는 쟁점이 되었다. 사상 초유의 mRNA 백신 개발에 쓰인 지질나노입자(LNP)의 전달기술 등은 대개 특허로 묶여 있었다. 모더나는 미국 특허심판원에 ‘아르부투스 바이오파마’의 LNP 특허를 무효화해 달라고 요청했다. 기술 성격상 특허 독점이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심판원의 기각으로 모더나는 기술사용료를 지불하게 됐다. 이미 연구개발 현장에서는 ‘리서치 툴’로서 범용성이 큰 기술에 대해서는 특허 독점 배타권으로 인해 후속 연구개발과 상용화가 지장을 받지 않도록 특허 효력 제한을 두는 등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2020년 10개월 만에 백신이 개발된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긴급사용승인, ‘초고속 작전’, 기업에게 면책권을 부여한 ‘백신 법정(공공준비 및 비상사태 대비법)’, 수출규제 행정명령 등 제도적·재정적 파격 지원이 있었다. 2019년 글로벌보건안보지수 1위인 미국은 역설적으로 팬데믹의 최대 피해국이었다가 비상조치에 의해 화이자·모더나·얀센·노바백스 백신의 종주국이 됐다.
각국 정부와 국제기구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막대한 재정 지원을 했다. 미·영·EU가 지원한 규모는 약220억 달러다(Airfinity: 2020.9). 팬데믹 사태를 기점으로 글로벌 백신시장은 뒤집혔다. 2019년 매출 1조3000억 달러의 세계 제약시장에서 백신시장은 330억 달러였고,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머크·화이자·사노피의 4개 기업이 매출의 90%를 차지했다. 그런데 2021년에는 모더나·노바백스 2개 기업의 매출이 머크·사노피·GSK의 매출 총액을 추월할 전망이다(Financial Times). 이들 3개 빅 파마가 출시한 코로나19 백신은 아직 없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 매출은 전년 대비 각각 20배와 220배로 추정되고, 화이자와 제휴한 독일 바이오앤테크의 CEO는 세계 500위권 거부가 됐다.
코로나19 백신 관련 특허의 효력을 잠정 제한하자는 제안에 대한 반대논리는 이렇다. 특허권 유예는 중국 등 다른 나라로 기술 유출을 늘리고, 미국·유럽 외에는 백신 생산 능력도 없으며, 앞으로 기업이 백신 개발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등이다. 이 대목에서 고 정주영 회장의 “해 보기나 했어?”가 떠오른다. 안되는 이유만 들여다보면 이 세상에 될 일이 별로 없다.
코로나19 백신의 새로운 시장은 매년 100억 달러로 예상되고 있다. mRNA 백신은 배양과정을 거치지 않아 단기간에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단 LNP 기술 등 설비를 갖춰야 한다. mRNA 플랫폼 기술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초저온 저장이 필요없는 온도 안정성, 대량생산, 가격 낮추기는 물론 변종에 듣는 백신으로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 특허를 풀고 기술이전을 하면 개도국을 포함해 역량을 결집할 수 있다. 인간사회가 바이러스보다 낫다는 강점은 집단지성이다. 중국·러시아의 백신외교 경쟁이 예상되는 시점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이 돌아왔다(America Is Back)”는 통큰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여기 있다.
김명자 서울국제포럼 회장·한국과총 명예회장·전 환경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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