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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잭슨홀에 선 이창용 “시나리오 토대 포워드 가이던스 제시해야” - 동아일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준금리 인상 등을 설명하고 있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이날 기준금리를 연 2.25%에서 2.5%로 0.25%포인트 인상했다. 2022.8.25/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개방경제 국가들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두고 시나리오를 토대로 더욱 정교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향후 통화정책 방향과 관련해 시장과 대중에게 주는 사전 지침을 의미한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와이오밍주에서 열린 경제정책 심포지엄인잭슨홀 회의에서 ‘비전통적 통화정책의 신흥국 및 소규모개방경제에 대한 교훈’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 총재는 이번 발표에서 인플레이션이 수십 년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은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취한 비전통적 통화정책 효과에 대해 짚었다. 비전통적 통화정책은 전통적 통화정책과 달리 장기금리 하향조정, 회사채시장 안정 등 정책목표를 명시하고 이를 위해 금융시장에 직접 개입해 중앙은행이 의도하는 방향으로 금융시장을 이끄는 방식이다. 코로나19 위기 대응과정에서 미국 연준, ECB 등 주요 중앙은행은 국채나 지방채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과 같은 준재정활동을 넘어 회사채, 기업어음 등 위험자산으로 매입대상을 확대한 바 있다.

선진국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대체로 장기금리를 낮추고 경기를 안정시키는 효과를 거둔 반면, △‘포워드 가이던스’가 과도하게 단순화하는 경향이 나타났으며 △이로 인해 중앙은행의 출구 전략 구사가 어려워지고 △재정이 방만하게 운용되는 부작용이 초래됐다는 분석이다.

이 총재는 “또 다른 리스크는 중앙은행이 기존의 포워드 가이던스를 고수하려고 노력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신뢰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라며 “최근 저인플레이션에서 고인플레이션으로의 전환과정에서 중앙은행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이러한 경직성으로 인해 정책전환을 미루어 온 것에 일부 기인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최근 주요 중앙은행이 포워드 가이던스를 중단한 것은 앞서 언급한 비전통적 포워드 가이던스의 단점들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운데)가 지난 25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2022.8.25/ 사진공동취재단
이러한 선진국의 경험으로부터 우리나라와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나 신흥국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해 폴란드, 헝가리, 태국 등의 신흥국은 모기지담보부증권(MBS), 회사채를 매입하거나 국고채를 직접 매입하는 비전통적 정책을 펼쳤다.

이 총재는 “여러 연구에서 신흥국의 이러한 비전통적인 정책이 선진국에서와 마찬가지로 긍정적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그러나 이는 전세계가 코로나19 위기라는 공통의 충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임에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글로벌 유동성이 풍부한 가운데 선진국이 먼저 더 큰 규모로 금기를 깨고 있었던 덕분에, 신흥국은 초확장 정책에도 불구하고 환율상승과 같은 불이익을 피할 수 있었다”며 “향후 신흥국이 홀로 저성장 및 저물가 위험에 직면해 유사한 비전통적 정책을 시행할 경우에도 같은 결과를 거둘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태국과 같은 아시아 신흥국에서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며 저물가·저성장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내놨다.

이 총재는 “출구전략의 유연성을 크게 제약하는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신흥국의 이상적인 정책수단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신흥국에서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원활히 사용되기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 있다”고 짚었다.

이를테면 이자율을 크게 낮추는 비전통적 통화정책 경로가 신흥국의 경제 기초여건과 어긋난다고 판단될 경우 통화절하 압력이 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정우위에 대한 우려 역시 중요한 고려 사항으로 꼽았다. 일본의 경우 1990년대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정부부채의 주요 원인이 흔히 언급되는 경기 부양이 아니라 고령화와 복지였다고 이 총재는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 사례를 통해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경제에서는 ‘일시적으로 확장적 재정정책을 펴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유지하겠다’는 계획이 쉽게 신뢰를 얻기는 어려울 것을 잘 알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이 총재는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의 대안으로 고려할 수 있는 정책 수단으로 ‘시나리오에 기반한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했다. 지난해 여름 전 세계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적인지, 단기에 그칠지 불확실성이 매우 높았던 상황을 예로 들었다.

이때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해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압력이 장기화하는 첫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보다 강력한 금리 정상화 정책을 제안하고, 이와 반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일시적이고 공급 측 요인에 주로 기인하는 두 번째 시나리오에서는 중앙은행이 코로나 위기로부터 회복 중이던 경제를 뒷받침할 수 있게 완화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정책을 제안할 수 있었을 것이란 설명이다.

이 총재는 “이러한 형태로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 포워드가이던스를 했다면 저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고인플레이션 국면으로 넘어가는 최근의 이행과정에서 보다 유연하게 정책 대응을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신흥국과 소규모개방경제에서 간단한 기본 시나리오와 대안 시나리오를 만들기가 기술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인정하며, 대중과의 소통에서도 어려움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최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통화정책 결정을 사례로 들었다. 지난 7월 금통위에서 사상 처음으로 기준금리 0.50%포인트(p) 인상을 결정하기에 앞서 이러한 장단점을 논의한 끝에 일종의 절충안을 취했다는 설명이다.

즉, 공식의결문에는 “금리인상 기조를 이어 나갈 필요가 있다”와 같은 정성적 문구만 포함하기로 한 반면,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물가 흐름이 현재 우리가 전망하고 있는 경로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금리를 당분간 0.25%p씩 점진적으로 인상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 있다”는 구체적인 포워드가이던스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이를 두고 “이러한 접근은 시장이 원하는 최소한의 포워드가이던스를 제공하면서도 향후 통화정책 운용상의 신축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고 전했다.

이러한 ‘시나리오 기반의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기도 했다.

이 총재는 “신흥국이나 소규모개방경제에서는 대외 불확실성이 주는 영향이 더욱 큰 만큼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경우가 더 빈번하기에,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가 이상적인 정책수단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며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도가 불충분하고, 재정우위, 부채 지속가능성 및 통화가치 하락에 미치는 영향도 더 크기 때문에 비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는 선진국에 비해 신흥국에서 리스크가 훨씬 큰 정책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서 “그러나 인구 고령화 등으로 향후 신흥국 경제가 구조적 장기침체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양적완화와 포워드가이던스 같은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완전히 포기할 수도 없을 것”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신흥국들은 앞으로 시나리오 기반의 전통적 포워드가이던스와 같은 보다 정교한 정책체계를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신흥국 및 소규모개방경제가 각자의 여건과 필요에 최적화된 비전통적 정책수단을 갖추기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분석 역량, 경험의 축적, 폭넓은 연구가 필요하며, 지금과 같은 때야말로 이를 위해 투자할 시기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잭슨홀 회의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구성하는 12개 지역 연방준비은행(FRB·연은) 중 하나인 캔자스시티 연은이 매년 8월 주요국 중앙은행 총재와 경제 전문가를 잭슨홀에 초청해 개최하는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이다.

이번 회의는 26~27일(현지시간)에 걸쳐 ‘경제 및 정책 제약조건에 대한 재평가’(Reassessing Constraints on the Economy and Policy)를 주제로 열렸다. 이 총재는 이번 회의에서 ‘팬데믹 이후 정책 전망’(The Outlook for Policy Post-Pandemic) 세션의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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