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고랜드 사태로 불거진 채권시장 자금경색 다소 누그러져
신용도 높은 우량 채권만 거래 … A급 이하 기업 등 고금리 시달려
레고랜드 사태가 촉발한 유동성 경색이 채권시장을 한 차례 휩쓸고 지나갔다. 정부 주도로 시장에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하면서 급한 불을 껐다. 하지만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았다. 내년에 금리가 높은 상태를 유지하고 기업들의 실적 악화와 경기 침체로 신용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의 미분양이 무서울 정도로 확대되면서 채권시장의 리스크 요인으로 남아 있다. 살얼음판을 걷는 채권시장. 다소 안정되는 듯한 분위기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현황과 위험 요인을 진단해 본다.
[황윤주 기자, 이민지 기자, 임정수 기자] 레고랜드 사태 이후 불안이 증폭됐던 채권시장과 단기금융시장의 자금 경색이 풀리고 있다. 미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도 속도 조절 가능성이 고개를 들면서 국고채를 비롯한 채권 금리가 하락했다.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채권 발행으로 불안했던 공사채 시장, 수급 우려로 금리가 폭등했던 은행채 시장, 조달이 막혔던 여전채(여신전문금융회사 채권) 시장에서 모두 금리 오름세가 꺾이고 자금 조달도 물꼬를 텄다.
다만 채권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가 돈을 풀어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지만 신용도가 높은 우량 채권 거래만 겨우 살아난 모습이다. 원자재 가격과 조달 비용 상승, 불경기에 따른 기업 실적 악화 등이 악재로 작용해 기업 신용위험 우려가 여전히 크다. A급 이하로 신용도가 다소 낮은 기업이나 금융회사까지 온기가 퍼지려면 아직 멀었다는 평가다.
유동성 지원 패키지 통해 … 美 금리 인상에도 시장 안정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금리를 50bp(1bp=0.01%포인트) 올렸는데도 한국 국고채 금리는 오히려 하락 안정세를 보였다. 지난 17일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3.539%로 장을 마감했다. 미국이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서 같은 만기의 국고채 금리가 올해 연중 4.548%로 올랐다기 최근 들어 1%포인트 넘게 하락한 것이다. 공동락 대신증권 부장은 "미국 재무부채권(TB) 10년물과 2년물 모두 큰 변화가 없었고, 국고채는 오후 하락 반전했다"며 "이는 채권시장이 긴축 기조를 선반영했고, 나아가 경기 침체 가능성을 고려해 정책 기조 자체가 변환될 수 있다는 기대를 빠르게 프라이싱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한때 수급 불안 때문에 유통시장에서 6%대 중반 수준으로 호가가 올랐던 3년 만기 한국전력공사채(한전채) 금리는 4%대로 내렸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4일 발행한 1500억원 규모의 3년물 한전채는 4.550%에 발행됐다. 한전채는 최우량 등급(AAA)인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신용등급이 낮은 회사채보다 높은 금리로 발행돼 채권시장의 전반적인 불안을 부추겼다. 실제 한전이 지난달 15일 발행한 3년물 금리(5.800%)는 같은 날 회사채(무보증3년) AA- 등급(5.346%)보다 높았다.
한전채 금리 하락의 배경으로 채권안정펀드(채안펀드) 가동과 자금 조달의 다양화를 꼽는다. 금융당국은 채권시장 안정을 위해 지난 10월24일부터 채안펀드를 가동하고, 만기 도래한 회사채(AA- 이상)와 여전채(A+ 이상), CP·전단채(A1)를 매입했다. 이와 함께 한전에 회사채 발행 자제와 은행 대출 전환을 권고했다. 채권시장을 교란한 한전채 발행 규모를 줄이고, 채안펀드를 통해 일부를 매입해 채권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현승희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앞서 채권시장의 자금 경색은 신용물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투자 수요가 위축된 영향"이라며 "채안펀드가 한전채 등 채권시장에서 자금 공급 역할을 하면서 시장 안정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금융당국은 내년 1월까지 채안펀드에 5조원 규모의 추가 캐피털콜(펀드자금 확충) 절차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또 정책 자금으로 운용되는 총 11조원 규모의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도 가동 중이다. 아울러 내년부터 5조원 규모의 프라이머리채권담보부증권(P-CBO) 프로그램도 가동할 예정이다. 이는 대기업, 중견·중소기업의 원활한 회사채 발행을 지원하기 위한 용도다.
일각에서는 한전채 등의 공사채 발행 한도가 확대되면 다시 수급 불안이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IB업계 관계자는 "한전채 발행 한도를 늘리는 한전법 개정안이 내년 3월에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전이 법 통과 시점까지 밀려 있던 한전채를 한꺼번에 조달하면 수급 불안으로 금리가 다시 튀어오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가스공사까지 발행 한도 증액을 요구하면서 공사채 공급 물량이 갑자기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비우량채 분위기는 싸늘 … 신용위험 우려 확대
회사채시장도 AA등급 이상의 우량채를 중심으로 안정되는 분위기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6일 3년 만기의 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금리는 5.265%다. 지난 10월 레고랜드 사태로 5.7%를 넘어선 후 Fed의 금리 속도 조절 기대감과 채안펀드 등 정부의 대규모 유동성 공급 효과가 나타나면서 하락세를 보였다. 회사채 금리가 내려가면서 기관들의 회사채 투자심리(투심)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인 크레딧 스프레드(신용등급 ‘AA-’ 기준 회사채 3년물 금리에서 같은 만기의 국고채 금리를 뺀 수치)도 축소됐다. 신용위험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우량 등급에만 투심이 쏠려있다. 유통시장에선 신용도 좋은 기업 위주로 웃돈 거래가 이루지고 있다. 채권 금리는 가격과 반대로 움직인다. 금리가 내려갈 수록 채권 가격은 높아진다. 최근 2024년 1월 만기인 ‘현대제철(AA)’120-3의 경우 5.5% 금리에 거래됐는데 민평 금리(민간 채권 평가사가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 대비 20bp가량 낮았다. 같은해 2월 만기의 ‘KB금융(AAA) 36-2’ 채권도 4.7%로 약 40bp 낮게 거래됐다.
이와 달리 같은해 4월 만기 조건의 ‘SK렌터카(A+)50-1’은 민평 금리 대비 5bp 높은 6.1%에 유통됐고, 9월 만기인 ‘삼양패키징(A-)2’와 ‘DL건설(A-)’1-2는 각각 6.081%, 6.407%로 민평 대비 35bp, 33bp 높게 거래됐다. SK매직, SK렌터카, 한솔제지 등의 A급 기업들은 7~8%대의 여전히 높은 금리로 사모채를 발행했다.
채권시장의 양극화를 반영하듯 신용도가 높은 우량채와 신용도가 낮은 비우량채권 간 신용 스프레드(금리차)는 역대 최대치로 상승한 채 내려오지 않고 있다. 지난 16일 기준 AA등급과 A-등급의 금리 차는 97bp 수준까지 올랐다. IB업계 관계자는 "A급 이하 회사채는 여전히 상당히 높은 금리에 거래되고 있다"면서 "신규 발행도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영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비우량채에서는 신용위기에 대한 우려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면서 "시기적으로 연말까지 금융회사의 북클로징 때문에 수급 불안과 환매 이슈, 단기자금시장의 추가?경색 가능성, 부동산 PF 불안 등 여러 가지 위험 요인들이 상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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