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구매 계약을 맺은 글로벌 제약사들의 코로나19 백신 4종은 접종 방식, 가격, 승인 상황 등이 제각각이지만, 효과와 개발 속도, 안전성 등에서 세계 최선두권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정부는 이르면 내년 초 백신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특히 영국 등 실제 백신 접종에 들어간 다른 나라의 상황을 살필 계획이다.
미국 화이자와 독일 바이오엔테크가 공동 개발한 백신으로 영국에서 지난 8일 서구권 최초로 접종이 시작되는 등 속도 면에서 가장 앞서 있다. 화이자 백신은 여태껏 개발된 적이 없던 엠아르엔에이(mRNA, 메신저 리보핵산)를 활용해 만들었다. 메신저 리보핵산은 세포에서 디엔에이(DNA) 정보를 전달하는 물질로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데 핵심 역할을 한다. 이 물질이 코로나 바이러스 표면 돌기인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 체내에서 면역 반응이 일어나고 항체를 생성하도록 설계됐다. 지금까지 백신은 바이러스 일부(항원)를 직접 체내에 주입해 만들어졌다. 소량의 바이러스를 투입해 면역 체계를 유도한 것이다. 화이자 백신은 이와 달리 유전자를 주입해 항원을 만들고, 다시 항체 생성으로 이어지게 하는 방식이다.
지난 7일 미국 뉴욕 맨해턴 거리의 화이자 백신 광고판 앞을 한 시민이 걸어가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이 방식은 대량 생산이 가능하지만, 바이러스보다 미세한 유전자를 이용하는 만큼 불안정하다. 이 때문에 보관·운송에 영하 70도 이하의 초저온 시설이 필요하고, 가격도 1회당 19.5달러로 비싼 편이다. 다른 백신의 2~5배 수준인데, 화이자 백신은 1인당 2차례 맞아야 한다. 예방 효과는 상당하다. 지난달 9일 서구권 최초로 3상 시험 중간 결과를 내놨는데, 면역 효과가 95%에 이른다. 다음과 같은 방식이다. 화이자의 3상 시험에는 총 4만3천여명이 참여했다. 절반은 코로나19 백신을 투여하고, 대조군인 절반에는 소금물로 만든 가짜백신(플라시보)을 투여했다.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코로나19 감염 여부를 조사했다. 감염된 이들이 170명이었다. 이 가운데 가짜백신을 투약받은 이들은 162명, 진짜 백신을 접종한 이들은 8명이었다. 만약 백신의 효과가 전혀 없었다면 백신군에서도 162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했어야 했는데 8명에 그쳤다. 이를 환산하면 백신 효과는 94.5%로 계산된다. 화이자는 특히 “65살 이상 연령층에서도 백신이 94% 정도의 효험을 보였다”며 고령층에서도 예방효과가 나타났다고 밝혔다.
미국 모더나는 화이자가 3상 시험 결과를 발표한 지 일주일 만인 지난달 16일 3상 결과를 내놓는 등 개발 속도 면에서 화이자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모더나 역시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메신저 리보핵산 방식을 적용해 개발했다. 이 때문에 보관·운송이 까다롭고, 가격도 1회당 25~37달러로 가장 비싸다. 모더나 백신도 화이자와 마찬가지로 1인당 2회씩 맞아야 한다. 다만 보관에 필요한 온도는 화이자보다 다소 여유가 있는 영하 20도이다. 면역 효과는 상당히 높았다. 3만여명이 3상 시험에 참여했고, 진짜 백신군과 가짜 백신군으로 나눠 투약한 결과 총 95명의 환자가 발생했다. 이 가운데 백신군에서 5명, 가짜 백신군에서 90명의 환자가 나왔다. 백신의 효과가 없었다면 백신군에서도 90명 정도의 환자가 발생해야 하는데 5명에 그쳤다. 백신의 효과는 94.5%로 계산된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은 회당 20달러가 넘을 정도로 비싸고, 고성능 냉동시설이 있어야 하는 등 보관과 운송도 까다롭다. 이 때문에 아프리카와 남미, 동남아시아 등의 저소득 국가에서는 대중적으로 활용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은 두 회사의 백신을 각각 2천만회(1천만명분)씩을 확보할 계획이다. 도입 시기는 내년 2~3월부터 시작될 것으로 보이고, 접종 시기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국내 코로나19 유행 동향과 국외 백신 접종 상황을 지켜본 뒤 탄력적으로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지난달 30일 인도 푸네에 있는 세계 최대 백신 제조사 세럼연구소에서, 위탁생산을 맡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생산하고 있다. 푸네/로이터 연합뉴스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 중인 백신으로, 지난달 23일 서구권 백신 중 3번째로 3상 시험 결과를 공개했다. 수십 년 전부터 쓰인 ‘바이러스 벡터’ 방식으로 개발돼, 안전성이 높고 보관과 운송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1회당 가격도 4달러로 가장 싸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침팬지에게 감기를 일으키는 ‘아데노 바이러스’를 운반체(벡터)로 활용한다. 이 바이러스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돌기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를 심는다. 이렇게 만든 백신을 인체에 주입하면, 세포는 이를 진짜 바이러스로 인식해 면역반응을 일으킨다. 이 방식은 수십 년 개발돼 말라리아와 결핵, 에볼라 백신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안전성이 확인된 방식이다. 게다가 아스트라제네카는 지난 7월 이윤을 남기지 않고 백신을 보급하겠다고 약속해 중·저소득 국가들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면역 효과는 화이자와 모더나 보다 다소 낮다. 지난달 23일 3상 시험 중간 결과를 내놨는데, 70%의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투약 방식에 따라 효과 차이가 커서 추가 시험을 하기로 했다. 1차 투약 때 용량을 절반만 투약한 실험군에서 90%의 효과가 나타났고, 전체 용량을 투약한 실험군에서는 62%의 효과가 확인됐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이렇게 다른 투약 방식을 의도한 것이 아니라 실수로 이뤄졌다고 밝혀 의문을 키웠다. 지난 8일 의학학술지 <랜싯>에 아스트라제네카의 발표를 검증하는 논문이 실렸다. 연구진은 이 회사 백신이 효과가 있다고 확인하면서 무증상 감염을 예방하는 효과도 있다고 밝혔다. 백신을 절반 주입한 실험군에서는 무증상 감염 예방 효과가 59% 나타났고, 전체 용량을 주입한 실험군에서 4%의 예방 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무증상 감염자에 대한 예방 효과를 별도로 분석하지 않았다.
앞선 3개의 백신과 달리 얀센은 아직 3상 시험에 대한 중간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속도 면에서 다소 뒤처져 있지만 세계 최대 의약사 존슨앤드존슨이 모회사이고, 네 회사 중 가장 많은 6만여명을 대상으로 3상 시험을 진행하고 있어 곧 신뢰할만한 효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캐나다와 유럽연합(EU) 등에서 승인 심사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얀센의 백신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과 같이 ‘바이러스 벡터’ 방식이 적용됐다. 보관·운송이 상대적으로 쉽고 비용도 1회당 10달러로 싼 편이다. 무엇보다 얀센의 백신은 다른 백신과 달리 한 차례만 맞는 방식이어서 간편하다. 얀센의 모회사인 존슨앤드존슨은 공시를 통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는 이윤 없이 백신을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최현준 기자
haojune@hani.co.kr
영국에서 8일(현지시각) 세계 최초로 일반인 대상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된 가운데, 이날 아침 6시31분 ‘세계 1호’ 코로나19 일반 접종자로 기록된 영국의 90살 노인 마거릿 키넌이 잉글랜드 코번트리 대학 병원에서 간호사 메이 파슨스에게 화이자와 바이오엔테크가 공동개발한 백신을 맞고 있다. 키넌은 “지금까지는 거의 혼자 지냈는데 새해에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만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니, 가장 좋은 생일 선물을 미리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코번트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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