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본 혼란의 2020년 부동산시장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와 여의도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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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그렇지. 이제 꺾일 때도 됐잖아.’ 김 과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값이 오른다는 이야기는 어디 먼 수도권 일부 지역에 국한됐다. 같은 부서 이 대리가 분양권을 알아보고 왔다던 수원 집값이 수억원씩 뛰었다. 그러자 정부가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대책을 내놨다. 수원 영통과 권선·장안구, 안양 만안·의왕구가 조정대상지역으로 묶였다. 대출 한도는 더욱 줄어들었다. 종전 60%가 적용되던 담보인정비율(LTV)은 9억원을 기준으로 초과분에 대해선 30%, 이하분에 대해선 50%가 적용되도록 바뀌었다. 김 과장은 내심 쾌재를 불렀다. 투자로 큰 돈을 벌겠다며 임장 채비까지 하던 이 대리가 결국 매수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배가 아플 뻔했다.
정부가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개발하기로 한 서울 용산정비창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대책의 말미엔 3기 신도시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사전청약이 부활했다. 이것 또한 10년 전 보금자리주택의 유물이었다. 김 과장은 당시의 파국을 기억했다. 30대에 당첨돼 40대에 입주하고, 50대에 전매제한이 풀린다던 사전청약. 그래도 1년 뒤면 사전청약을 시작한다니 내심 들떴다.
사실 문제는 지방이었다. 서울 집값은 완만하게 움직였지만 지방 아파트가격은 이 즈음부터 상승폭이 커졌다. 정부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규제지역 확대와 대출규정 강화를 담은 ‘6·17 대책’을 신속하게 발표했다. 법인 투자자들의 경우 ‘관에 못을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강력한 규제가 나왔다. 종합부동산세 공제액(6억원) 폐지와 단일세율(6%) 적용, 법인세 인상이 한꺼번에 나왔기 때문이다. 김 과장은 그동안 법인 투자가 성행했던 지역을 엑셀로 정리하면서 연말까지 집값이 떨어질 곳을 예측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서울은 없었다.
“강남 집값은 늘 언론이 올리지.” 김 과장은 이렇게 뉴스 댓글을 달았다. 강남 사랑은 언론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의 강남 사랑도 화제가 됐다. 다주택을 정리하라고 종용하던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반포 대신 청주 아파트를 팔았고, 김조원 민정수석은 집 대신 직(職)을 포기했다.
부동산시장이 요란해지자 정부는 부랴부랴 추가대책을 내놨다. 집을 절대 못 사게 하겠다는 ‘7·10 대책’의 신호는 단호했다. 취득세는 다주택자들에게 최고 12%까지 중과세가 적용되도록 바뀌었고 종부세 최고세율은 종전 3.2%에서 6.0%로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양도세 중과세율도 종전보다 10%포인트씩 인상됐다. 조정대상지역 3주택자는 그동안 최고 62% 세율을 적용받았지만 2021년 6월 1일 이후부턴 최고 75%를 적용받게 됐다. 소득세 과세표준 구간이 신설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주택을 사는 순간부터 보유하는 동안, 그리고 팔 때까지 매순간 높은 세금이 부과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 지경까지 왔는데도 집을 살 사람이 있단 말야?’ 김 과장은 이제 정말 부동산은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작 안 사길 잘했다는 생각도 조금은 해봤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연합뉴스
장관은 청와대에 불려갔다. 어떻게 해서든 공급 확대 방안을 마련하라는 게 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석 달 연속으로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지만 마지막 대책이 나온 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새 대책이 나올 태세였다.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해제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자 이번엔 아예 대통령이 나서 교통정리를 했다. 그러자 곧바로 ‘8·4 대책’이 나왔다. 절대 ‘영끌’을 하지 말라던 정부였지만 영혼까지 끌어모은 공급대책이었다. 수분양자가 20년 동안 조금씩 아파트 지분을 사모으는 지분적립형 주택의 개념이 등장하는가 하면 재건축에도 공공참여 방식이 도입됐다. 공공분양에만 존재하던 생애최초 특별공급은 민영아파트까지 확대됐다. 모든 물량을 추첨으로 공급하는 방식이다. 김 과장은 조금 기분이 나빴다. 신혼 기간이 끝나자 신혼부부 특별공급이 확대되더니 가점을 차근차근 모으자 이번엔 추첨제가 확대됐다. 찬물도 위아래가 있지.
김 과장이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서 전월세상한제는 기존 계약까지 소급적용된다는 사실을 설명하자 집주인은 자신이 직접 입주할 테니 나가라고 맞섰다. 강남에 사는 집주인이 이사 올 도리는 없어 보였지만 김 과장이 그것을 증명할 방법 또한 없었다.
이런 식으로 전국 전셋값이 연신 최고 상승률 기록을 갈아치우자 정부가 또 나섰다. 이번엔 전세대책이었다. 요란하게 나왔지만 핵심은 초라했다. 공공전세를 도입하겠다는데 그마저도 빌라가 대부분이었다. 새 아파트 청약경쟁률도 기본 200 대 1, 300 대 1을 넘기고 있었다. 어디 하나 불 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서울 시내 한 중개업소 매물판의 모습. 연합뉴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쯤엔 ‘12·17 조치’가 나왔다. 울산 남구 등 전국 36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한다는 내용이다. 250개 지자체 가운데 절반가량인 112곳이 규제를 받으면서 정부 공인 마크를 달게 되는 순간이었다. 안 오른 곳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이 가운데는 투자를 망설이던 창원 성산구도 있었다. ‘10년 전 하락장과 똑같은 수순이야.’ 다시 주문을 거는 동안 김 과장의 2020년이 저물고 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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