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 신광식 박사가 본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원인
대우조선 분식회계 때 사외이사…5년 소송 끝 면책 판결
“산은 내려준 목표에만 집중…공기업·공공기관처럼 운영”
“산은 체제 에이치엠엠도 헐값 시비말고 신속한 민영화 필요”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조선)은 지난 22년간 산업은행 관리 아래 있었다. 채권단 관리 체제에 들어간 2000년 이래로 대우조선은 모든 정권의 골칫거리였다. 민간에 매각해야 했지만 워낙 덩치가 커 주인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면서 대우조선은 점점 비대해지고 비효율적인 기업으로 변해갔다. 특히 2015년 7월 불거진 5조원대 분식회계 사건은 산업계에 큰 파문을 불러왔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표이사였던 고재호 전 사장과 산업은행에서 파견된 김갑중 전 최고재무책임자, 외부 감사를 맡았던 안진회계법인 소속 회계사들이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에 휘말렸던 또다른 사람들이 있다. 사외이사다. 당시 사외이사들은 회사를 감시하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도덕적 지탄을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연금공단·공무원연금공단·우정사업본부 등 대우조선 주주였던 기관들이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1천억원대에 달하는 민사소송을 냈다. 소액주주가 낸 소송까지 더한 13건의 소송 가액을 모두 합하면 2200억원대에 달했다. 하지만 5년간의 재판 과정을 통해 사외이사는 책임이 없다는 판결이 내려졌다. 사외이사들은 주어진 의무에 충실했고, 경영진이 사외이사들을 고의로 속였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의 모습. 연합뉴스
한국개발연구원 출신 경제학자 신광식 박사도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사외이사 가운데 한명이다. 그는 2013년 3월∼2015년 3월 대우조선 사외이사를 지냈다. 소송이 모두 마무리되자 학자의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다. 5년 동안 자신을 지옥에 몰아넣은 분식회계 사건이 왜 발생했는지 알고 싶었다. 재판 과정에서 나온 관련 문서 수천 쪽과 회계 자료를 탐독했다. 여기에 사외이사 경험을 더 해 지난 8월 대우조선 분식회계 사건의 원인을 짚은 책 <나는 대우조선의 사외이사였다>를 펴냈다.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가 사실상 결정된 시점에, 그의 이야기가 지난 22년의 산업은행 체제를 매듭짓는 상징적인 자료로 남을 것 같았다. 지난 14일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신광식 박사를 만나 80여분간 대화를 나눴다. 신 박사가 본 대우조선 대표이사와 임원진은 “경영자가 아니라 관리자”였다. “경영자라면 상당한 재량을 갖고 경영상 필요하다면 파격적인 조치까지 해야 한다. 하지만 대우조선 경영진은 산업은행이 내려준 목표를 달성하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산업은행과 대우조선이 1년마다 맺는 경영 업무협약(MOU) 탓이다. “업무협약에는 연간 영업이익, 수주 목표가 들어갔다. 조선업 시황과 무관하게 매번 전년 대비 높은 실적을 요구했다. 대외 상황의 변화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해야 하는 민간 기업을 공기업, 공공기관 대하듯 관리했다. 이 목표를 맞추기 위해 회계 조작이 이뤄졌다.”
2013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대표이사와 체결한 경영 MOU의 내용. 신광식 박사 제공
회계 장부에 손을 대면서까지 경영 목표를 달성했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가 내놓은 답은 “회사 전체에 대한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인력·사업 구조조정, 직원 복지 축소 등 회사가 전반적으로 불이익을 받는다. 매년 지급돼 임금처럼 여겨지는 성과 상여금도 못 받게 돼 노사 분규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리스크를 피하고 싶었을 거다.” 신 박사는 고재호 전 사장을 개인적으로 비난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고 사장은 워커홀릭이었다. 회사를 살리려고 엄청 노력했다. 직전 사장과 달리 개인 비리도 없었다. 회사 구성원이 피해를 받지 않게 하려고 손실을 조금씩 뒤로 미루다 보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은 2015년 정성립 사장 취임 이후 5조원의 손실을 반영한다고 발표했다. 부실 요소를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하는 ‘빅배스’를 결정한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2015년 전에 이미 5조원 가운데 일부를 손실로 반영해야 했는데, 당시 경영진은 이를 고의로 미뤘다. 신 박사는 고 전 사장이 2조원 이상의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하겠다고 결정했어도, 산업은행이 이를 거부했을 거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이사회에 올라온 안건은 모두 산업은행이 사전에 승인한다. 2014년에 이사회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는데, 고 사장이 따로 불러내 위에서 내려온 거라 어쩔 수 없다며 찬성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안건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다. 실제 산업은행 쪽에는 조작된 회계 자료가 보고됐고, 회계조작 사건이 밝혀지자 산업은행은 “몰랐다”는 대답만 내놨다. 그는 “주가 폭락은 물론이고 산업은행 회장 책임론까지 불거질 게 뻔한데, (고 전 사장과 경영진들이) 수조원대 손실 반영을 보고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신 박사가 이번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를 반기는 이유다. 그는 “조선업은 긴 주기를 두고 호황과 불황이 반복되는 글로벌 시장으로, 굉장히 큰 리스크에 노출돼 있어 장기적인 관점을 갖고 경영해야 한다”며 “재벌 총수라면 경영상 판단에 따라 수조원의 손실을 한꺼번에 반영해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반면,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대우조선에서는 그런 판단을 못 하는 구조였다”고 했다. 2013년 조선 시황이 꺾이면서 조선업계 실적이 급격히 추락했다. 현대중공업은 2014년 3조2천억원의 손실을 털어냈고, 삼성중공업의 2014년 영업이익은 1830억원으로 전년도 영업이익(9142억원)보다 약 7천억원이 줄었다. 반면 대우조선은 오히려 2014년 영업이익이 2013년(4409억원)보다 늘어난 4711억원을 기록했다고 공시했다. 당시 조선업계는 현대·삼성과 달리 대우조선이 탄탄한 실적을 유지한 것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신 박사는 대우조선에 이어 산업은행을 대주주로 맞이한 에이치엠엠(HMM)도 신속한 민영화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 회사는 산업은행이 20.6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소유한 회사는 손실이 발생하면 공적자금이 들어가면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헐값 시비 연연하지 말고 어느 정도 손실이 회복되고 자생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면 민간에 매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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