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시장이 얼어붙으며 스타트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버티기’에 들어가고 있다. 기존 인력을 대거 감축하거나 신규 채용 속도를 줄이는 한편, 몸값을 반 이하로 떨어뜨려서라도 후속 투자 유치를 꾀하거나 준비하던 기업 상장(IPO) 시기를 늦추는 등의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메타·트위터·아마존 같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경기 침체 등을 이유로 잇따라 투자 축소와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국내 스타트업들도 ‘한파’를 맞는 모습이다. 무엇보다 직원 일부를 내보내거나 신규 채용에 신중해진 기업들이 크게 늘었다. 오티티(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왓챠’가 지난 7월 대규모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데 이어, 재능 공유 플랫폼 ‘탈잉’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90명에 이르던 직원 수를 25명 가까이로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유 사무실에 입주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한겨레>에 “같은 층에 입주한 다른 스타트업 대표 표정이 좋지 않길래 이유를 물으니 ‘자금 사정이 좋지 않아 직원들 상당수를 내보내게 됐다’고 했다. 옆에서 보니 매일같이 직원들을 한 명씩 따로 불러내 면담을 하더라”라고 전했다. 인력 감축으로 몸집을 줄인 스타트업들이 사무실을 작은 곳으로 옮기는 경우도 늘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올해 초까지만 해도 많은 스타트업이 인력을 늘리느라 서울 강남 일대 사무실들이 ‘품귀’ 현상을 겪었는데, 최근에는 공실률이 높아졌는지 ‘빈 사무실 있으니 보러 오라’는 연락이 많이 온다. 빈 자리가 생긴 사무실 일부를 재임대하는 업체도 있다”고 말했다. 몸값을 낮춰서라도 후속 투자를 유치하려 애를 쓰는 스타트업도 속출하고 있다. 인슈어테크(보험+기술) 스타트업 ‘보맵’은 지난달 말 에즈금융서비스로부터 50억원 규모의 전략적 투자를 유치했다. 보맵의 기업 가치는 투자 금액보다 낮은 48억원 가량으로 평가받아, 업계에선 “사실상 적대적 인수합병”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 업체의 가치는 한때 630억원으로 평가되기도 했지만 적자가 누적되며 몸값이 크게 떨어졌다. 배달 대행 플랫폼 ‘부릉’ 운영사 메쉬코리아는 지난해 1조원 가량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1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했지만, 올해 들어 후속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으며 몸값을 2000억원 수준으로 낮춰 매각을 추진 중이다. 이 업체는 최근 네이버, 현대자동차, 지에스(GS)홈쇼핑 등 기존 투자자들 쪽에 500억원 규모 증자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벤처캐피털(VC)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과거에는 스타트업들이 재무적 투자자(FI, financial investors)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는 것을 선호한 반면 전략적 투자자(SI, strategic investors)의 투자는 꺼려했다. 큰 기업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사업 모델을 따라하거나 지나치게 싼 값에 인수하려는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재무적 투자자 쪽 돈이 뚝 끊기다 보니, 남의 돈이 아닌 자기 돈을 굴릴 수 있는 전략적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으려 몸값을 자진해서 떨어뜨리는 스타트업이 늘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시장 유동성이 줄어들다 보니 이전에는 5∼8년 정도는 믿고 지켜봐 주던 유한책임투자자(LP, limited partenr)들이 펀드에 출자한 돈을 언제 회수할 수 있냐고 묻는 경우가 늘었다”고 덧붙였다. 일부 스타트업은 예고했던 기업 상장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전자책 플랫폼 ‘밀리의 서재’가 이달 초 “국내외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공모주 수요 예측을 벌인 결과 회사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렵다고 봤다”며 금융감독원에 상장 철회 신고서를 냈다. 카카오게임즈도 투자 심리 위축을 이유로 자회사 라이온하트스튜디오 상장을 철회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난 8월 차량 공유 플랫폼 ‘쏘카’가 몸값을 1조원 아래로 낮춰 상장을 강행했지만 흥행에 ‘참패’ 하는 걸 보고 몸을 사리는 스타트업이 늘었다”고 말했다.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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