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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금리 약발 안 들어 미국 경제 경착륙 불가피 - 한겨레

이코노미 인사이트 _ Economy insight
파이낸스 l 미국 노동력 부족과 통화정책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의 쿠도바 레스토랑 창문에 직원을 구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2년 9월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REUTERS
미국 켄터키주 루이스빌의 쿠도바 레스토랑 창문에 직원을 구한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2022년 9월 미국의 실업률은 3.5%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REUTERS
▶이코노미 인사이트 구독하기 http://www.economyinsight.co.kr/com/com-spk4.html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물가를 잡기 위해 강력한(?) 긴축정책을 편다. 관련 인사들의 매파적 발언도 연잇는다. 이런 강경한 태도는 부분적으로 작동하는 듯하다. 시장은 자세를 낮추고 성장은 흔들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고용시장은 좀처럼 위축되지 않는다. 2022년 9월 미국의 실업률이 3.5%로 집계됐다. 역사적 최저치다. 8월 3.7%이던 실업률이 3.5%로 오히려 더 낮아졌다. 9월 한 달 동안 미국의 고용은 26만3천 건 늘었다. 이 또한 시장 전망치를 뛰어넘는 수치다. 중앙은행의 긴축은 결국 수요 둔화 혹은 파괴가 목적이다. ‘고금리-기업 실적 부진-채용 축소·감원-실업자 증가-소득 감소-수요 둔화’라는 사이클로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제어하려 한다. 이번 긴축은 일단 채용 축소와 감원까지는 성공했다. 문제는 그 규모다. 미미하다.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여전히 일자리가 일을 찾는 사람보다 많다. 연준의 강한 긴축에도 미국 고용시장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그런 현상이 일시적이 아닌 구조적 원인으로 일어났다면 연준의 통화정책은 상당 기간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물가가 연준의 통화정책으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지속적 고금리로 ‘부채 경제’에 압력이 누적돼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해야 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고용시장 호황의 이유
짧은 침체기였던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실업자는 꾸준히 줄고 일자리는 지속해서 늘었다. 일자리와 실업자 수가 균형을 이룬 시점은 2021년 5월이다. 이후 미국 고용시장의 추가 노동자 쪽으로 기울었다. 기업은 원하는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없게 됐다. 일자리가 많지만 일을 찾는 사람은 크게 늘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은 미래 어느 시점에 해소될 수 있다. 실제로 일자리 수는 2022년 3월 1185만 개로 정점을 찍었다. 이후 하락세를 보이며 8월 1천만 개 남짓으로 정점에 비해 약 200만 개 줄었다. 연준의 강한 긴축이 영향을 끼쳤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노동시장 참여율도 높아졌다. 25~54살 핵심 생산가능연령대의 노동시장 참여율은 2019년 말 82.9%였다. 2022년 9월 현재 82.7%에 이른다. 대부분 회복됐다. 일자리는 줄고 일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 언젠가 균형을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일자리와 실업자 수의 격차에 있다. 격차가 줄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크다. 일자리를 구하는 실업자 수는 570만 명 정도다. 반면 빈 일자리는 1천만 개가 넘는다.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하려는 사람은 적은 불균형이 이른 시일 안에 해소될 수 있을까? 팬데믹 기간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떠났다. 이제 돌아와야 하지만 복귀 속도가 느리다. 원인과 이유는 많다. 분명한 건 이들이 얽히고설켜 인력 부족 현상을 악화한다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 가속화다. 여기에 낮은 출산율, 미미한 이민자 증가도 영향을 줬다. 한마디로 인구통계 요소가 노동시장 인력풀(후보군)을 축소시켰다. 2021년 미국 인구 증가는 1937년 이후 처음으로 100만 명 이하에 그쳤다. 반면 65살 이상 인구 비율은 현재 약 18%에서 2060년 23%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인구 증가가 미미한 상황에서 고령화로 노동시장 인력공급원 자체가 줄고 있다. 2010년은 미국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된 해다. 이후 일자리 대비 노동시장 참여자의 비율이 계속 하락하고 있다. 2018년 1 아래로 떨어졌다. 팬데믹으로 한때 올랐다가 2021년 하반기 이후 계속 1을 밑돈다. 참여자보다 일자리가 많은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참여자가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를 꼽는 건 합리적 분석이다. 조기 은퇴도 한몫한다. 미국 주식시장은 팬데믹 이후 급등했다. 이때 많은 사람이 큰돈을 벌었다. 부동산 또한 마찬가지다. 부의 효과로 조기 은퇴가 늘었다. 일하는 대신 소유 자산만으로 생활하는 사람이 늘었다. 이들은 쉽사리 노동시장으로 복귀하지 않는다. 롱코비드(Long Covid), 즉 코로나19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다. 2022년 1월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 연구 발표에 따르면 노동가능인구 가운데 코로나19 감염 후유증을 겪는 미국인은 1600만 명이 넘는다. 이 중 180만~410만 명이 후유증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지 못한다. 연준은 180만 명, 의학잡지 <랜싯>(Lancet)은 410만 명으로 추산한다. 완전한 장애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후유증은 노동 부족을 얼마든지 낳을 수 있다. 후유증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면 전 시간(풀타임) 노동을 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증상이 호전되면 일하겠지만 다시 도진다면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 완전한 노동시장 복귀가 어렵다는 얘기다.
2022년 9월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준이 듣는다: 포스트 팬데믹 경제로의 이행’ 행사에 다른 이사들과 함께 참석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가운데)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2022년 9월23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연준이 듣는다: 포스트 팬데믹 경제로의 이행’ 행사에 다른 이사들과 함께 참석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가운데)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REUTERS
노동에 대한 인식과 시대정신 변화도 간과할 수 없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많은 노동자가 출근하지 않아도 생산성이 떨어지지 않는 경험을 했다. 무엇보다 재택근무에서 가정과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느꼈다. 팬데믹은 ‘일’을 다시 생각하게 했다. 일해 돈을 버는 것보다 중요한 게 있음을 알았다. 일도 중요하지만 개인적 삶이 더 가치 있다는 믿음이 퍼졌다. 현재는 문화적 충격 측면이 있지만 이 흐름은 가속화해 마침내 일반화할 것이다.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는 회사인 애플에서조차 사무직 직원들이 사무실로 복귀하지 않으려 한다. 기업문화나 멘토링 등의 이유를 들어 관리자들이 복귀를 재촉하지만 노동자를 설득하지 못한다. 기업이 굳이 복귀를 명령한다면 이들은 사표를 낼 수밖에 없다. 일을 그만두는 사람이 느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통화정책의 덫
이런 노동 부족 요인은 미국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말한다. 구조적 변화라면 노동 부족 현상을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없다.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8월24일 ‘흔들리는 경제 속에서도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해고 노동자가 빠르게 새 일자리를 얻고 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경제가 흔들리는 와중에 일자리가 풍부한 현상을 이례적으로 본 것이다. 이미 구조적 변화가 시작된 미국 노동시장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드러낸다. 언론만이 아니다. 기업주는 물론이고 정치인과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노동시장의 균형추가 여전히 기업을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 있다고 믿는다. 자신들이 고용시장을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해고를 늘려 실업률을 높이고 임금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다. 가능할까? 이미 어렵다는 게 입증되고 있다. 연준이 강한 긴축을 유지하지만 고용시장은 활황세를 보인다. 해고가 늘어 노동자 주머니가 비어야 하는데 외려 가득찬다. 미국 노동자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사상 최고치를 고쳐쓰고 있다. 8월 27.67달러에서 9월 27.77달러(약 4만원)로 늘었다. 미국의 경제성장이 주춤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1월 26.55달러에서 9개월 만에 1.22달러가 늘었다. 전년 동월 대비 증가세를 보면 최근 둔화되곤 있지만 8월에도 8.57%나 올랐다. 이런 변화는 경제를 완전히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가고 있다. 성장은 노동력과 생산성의 결과물이다. 노동력이 줄면 성장은 억제된다. 침체의 골로 빠졌을 때 회복도 더딜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당면 과제인 인플레이션 통제가 매우 힘들어진다. 연준이 금리를 올려 수요를 둔화시키려 애쓰지만 고용시장 활황세로 먹히지 않는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근원물가 상승에 기인한다는 점이 이를 상징한다. 근원물가 상승은 결국 사람들이 씀씀이를 줄이지 않는 데서 비롯한다. 식량과 에너지 등 필수재는 돈이 없어도 사야 하지만, 소비재나 서비스는 그렇지 않다. 이들 가격이 오르는 것은 결국 소비자의 호주머니가 든든해서다. 빚내는 비용이 늘었는데도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다. 다시 말해, 언제든 일해 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서다. 해고돼도 더 나은 일자리가 기다리는데 걱정할 게 무엇인가? 연준의 통화정책은 덫에 걸렸다. 통화정책을 통한 수요 둔화는 노동 부족 현상으로 달성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더 강한 긴축으로 경제를 나락으로 몰고 갈 수는 없다. 수요 파괴로 물가를 잡을 용기도 없다. 그렇다면 답은 뻔하다. 어정쩡한 고금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방식으로 물가를 잡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물가는 의외로 모두가 포기할 때 잡힐 수 있다. (상대적) 고금리의 누적된 압력이 부채 경제의 뇌관을 터뜨려 경제가 경착륙하는 순간이 바로 그때다. 언제일지는 누구도 모른다. 자연은 평형을 추구한다. 경제는 인위적 결과물이지만 자연의 섭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평형은 의도해서가 아니라 불가피하게 찾아온다. 윤석천 경제평론가 maporiv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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