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거 추신수 전격 영입해 마케팅효과 톡톡
NC '택진이형' 벤치마킹…롯데 신동빈 회장에 '도발'
SSG 랜더스 유니폼을 입은 정용진 부회장. / 출처=정 부회장 인스타그램
“용진이 형이라 불러 달라고 합니다. 용진이 형 대 택진이 형 같은 그림을 생각하는 듯해요.”올해 초 프로야구단(SK 와이번스) 인수 소식이 전해진 뒤 만난 신세계 관계자들은 이같이 말했다. 이젠 어엿한 SSG 랜더스 구단주가 된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사진) 얘기다. 택진이 형은 NC 다이노스 구단주인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친숙하게 부르는 애칭이다.
정 부회장과 신세계 관계자들은 왜 택진이 형을 언급했을까. ‘유통 라이벌’ 구단인 롯데 자이언츠를 제쳐두고서 말이다. 평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활동으로 유명한 정 부회장이 한층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겠단 뜻인 동시에, 야구단을 통한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염두에 뒀다는 느낌을 받았다.
NC 다이노스는 지난해 우승을 차지한 강팀이다. 성적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한국시리즈 우승 세리머니(축하 의식)였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모여 모회사 엔씨소프트의 간판 게임 리니지에 등장하는 아이템 ‘집행검’을 들어 올리는 장면에 외신까지 주목했다. 1982년 출범해 40년 가까운 역사의 한국 프로야구(KBO)에서 KIA·삼성·두산 등 대기업을 모그룹으로 둔 구단들이 숱하게 우승했지만 작년 NC처럼 기업 스토리텔링을 오롯이 녹여낸 사례는 없었다.
정 부회장이 3월30일 열린 SSG 랜더스 창단식에서 구단주로서 포부를 밝히는 모습. / 사진=연합뉴스
구단명을 공개하고 메이저리거 추신수를 영입하는 등 흥미로운 행보가 이어졌다. 추신수의 입국 직후 구단 인스타그램에는 “배달도 불가능한 외진 곳에서 자가격리 중인 추신수 선수를 위해 쓱(SSG) 배송으로 식료품이 도착했다”는 게시글이 올라왔다. ‘자연스럽게’ 쓱 배송의 강점을 알리고 거부감은 줄여 일반 광고·홍보보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돋보였다.
이후 정 부회장은 3월 말 구단 창단식을 앞두고 클럽하우스를 통해 “야구단을 가진 롯데를 보면서 많이 부러워했었다. 앞으로 롯데는 울며 겨자 먹기로 우리를 쫓아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맞수 롯데 도발에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지만, 정 부회장의 핵심 메시지는 SSG 랜더스를 활용한 마케팅 방향성이었다.
“(롯데가) 본업 등 가치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시키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본업과 연결할 겁니다.”
SSG 랜더스와 스타벅스의 콜라보 유니폼 '랜더스벅'은 지난 21일 온라인 판매 3분 만에 완판됐다. / 사진=연합뉴스
그 결과물이 나오고 있다. SSG 랜더스와 스타벅스의 콜라보레이션(콜라보·협업)은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지난 21~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스타벅스 데이’ 행사 경기 현장 티켓이 모두 매진됐고, 온라인 판매한 한정판 콜라보 유니폼 340장은 3분 만에 완판됐다.
이마트와 미국 스타벅스 본사가 지분을 50%씩 보유한 스타벅스커피코리아는 정 부회장이 미국 유학 시절 스타벅스를 접한 뒤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익히 알려졌다. 스타벅스는 신세계그룹의 매출 효자 노릇을 하는 데다 선보이는 굿즈(브랜드 기념품)마다 매진될 정도로 브랜드 파워가 높다. 스타벅스와 스포츠 구단의 콜라보 사례 자체가 이색적이라 더욱 화제가 됐다.
콜라보를 앞둔 SSG 랜더스 구단의 ‘영리한 노출’도 눈에 띄었다. 정 부회장이 언급한 대로 전체적인 마케팅 방향성을 확고히 잡은 뒤 이를 재치있게 활용한 사례라 할 만했다.
지난 19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SSG 랜더스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 박빙 승부를 벌이던 8회초 추신수의 ‘KBO 첫 만루홈런’이 터졌다. 덕아웃으로 돌아와 팀 동료들 축하를 받은 추신수는 마지막 순간 스타벅스 로고가 선명한 커피를 건네받아 마셨다. 이 장면은 방송사 생중계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혀 마케팅 효과가 극대화됐다.구단 홈구장인 인천 SSG랜더스필드에는 세계 최초로 스타벅스 매장이 입점했고, 이달 8일엔 빠르게 성장하는 신세계푸드 햄버거 프랜차이즈 ‘노브랜드 버거’ 100호점도 문을 열었다.
정 부회장은 ‘도발’도 불사했다. 지난달 말 6년 만에 서울 잠실구장을 찾아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한 구단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겨냥해 “동빈이 형은 원래 야구에 관심 없었는데, 내가 도발하니까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내 도발로 롯데가 불쾌한 것 같은데 그럴 때 더 좋은 정책이 나온다. 계속 불쾌하게 만들어서 더 좋은 야구를 하게 만들겠다”면서 “롯데와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다. 이런 라이벌 구도를 통해 야구판이 더 커지길 원한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우승한 NC 다이노스 선수들이 '집행검 세리머니'를 펼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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