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회장 "완전 철거·재시공 고려…안전보증 30년으로 연장"
"회장직 사퇴, 가식적인 쇼에 불과"…사과에도 여론 '냉담'
하중 견딜 임시 지지대 없고, 양생 작업 부실 정황 드러나
노형욱 국토부 장관, HDC현산에 가장 강한 패널티 시사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한 지 7일 만에 대국민 사과를 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이번 대형사고와 관련해 안전 점검에 문제가 있다면 아파트의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잇단 대형사고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은 HDC현산이 총책임자의 사퇴와 대국민 사과로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비난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특히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임시 기둥(일명 동바리)을 철거하는 등 부실시공 정황이 속속 드러난 데다, '책임 회피성 사퇴'라는 지적까지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시공능력 평가 9위의 대형 건설사 건설현장에서 후진적 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HDC현산이 주택사업에서 사실상 퇴출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 회장은 지난 17일 HDC현산 용산 사옥에서 기자회견 열고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와 관련해 "책임을 통감하며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어 "아파트 안전은 물론 회사 신뢰가 땅에 떨어져 죄송하고 참담한 마음"이라며 "다시금 고객과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며 사과했다.
또 사고 대책과 관련해 "안전 점검에 문제가 있다면 계약해지는 물론 아파트 완전 철거와 재시공도 할 것"이라며 ”앞으로 전국 건설현장에 외부기관의 안전진단을 실시하고 현재 골조 등 구조 안전 결함의 법적 보증기간이 10년인데 이를 30년까지 대폭 늘리겠다"고 밝혔다.
정 회장은 대국민 사과 이후 광주 아파트 붕괴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을 만나 "어떠한 일로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회장직에서) 사퇴했지만 책임지기 위해 붕괴 현장 온 것"이라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정몽규 회장 사퇴 가식적인 쇼…"책임 있는 조치 확실하게 해야"
정 회장이 사퇴했으나, 여론은 냉담하다. 이번 사고로 실종된 근로자들의 가족 측은 '가식적인 쇼'에 불과하다며 정 회장에게 실질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피해자 가족 협의회 안모(45) 대표는 이날 오전 사고 현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정 회장은 책임을 회피하고 물러날게 아니라 실질적인 사태 해결을 총괄 책임지고 응당한 처벌을 받으라"고 주장했다.
안 대표는 "고개 몇 번 숙이는 사과는 '가식'과 '쇼'에 불과하다"며 "물러나는 것은 자유지만, 책임을 지지 않고 물러나는 것은 면피"라고 말했다. 이어 "사퇴 뒤 다른 사람을 세운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고 어디선가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며 물러나겠다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정 회장의 사퇴는 책임 회피성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정 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본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퇴가 능사도 아니고, 책임지는 모습도 아니다"며 "사고 수습 전면에 나서 책임 있는 조치를 확실하게 이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실종자 구조에 모든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가족과 상인, 주민들에게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며 "사고 아파트를 비롯해 건설 중인 모든 아파트에 대한 엄정한 안전진단을 통해 입주 예정자는 물론 국민과 전문가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강구하라"고 밝혔다.
◆"총체적 안전 불감증"…부실 공사 정황 속속 포착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와 관련해 부실 공사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앞으로 사법 당국의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겨울철 콘크리트를 충분히 굳히기 위한 '양생' 작업이 부실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건설조노 광주전남본부가 확보한 광주 화정아이파크 201동 콘크리트 타설 일지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3일 35층 바닥면 콘크리트를 타설하고, 10일 뒤 위층인 36층 바닥을 타설했다. 이후 37·38층 바닥을 각각 7일과 6일 만에 타설했고, 38층 천장(PIT층 바닥)도 8일 만에 타설됐다. 일주일 후에는 PIT층(설비 등 배관이 지나가는 층) 벽체가 타설됐고, 11일 뒤 39층 바닥을 타설하는 과정에서 붕괴사고가 일어났다.
겨울철 콘크리트를 충분히 굳히는 양생 작업이 부실하게 이뤄지면서 하층부가 갱폼(거푸집)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졌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에 대해 HDC현산은 지난 12일 "사고가 난 201동 타설은 사고 발생일 기준 최소 12일부터 18일까지 충분한 양생 기간을 거쳤다"며 "아래층인 38층은 사고일 기준 18일의 양생이 이뤄졌으며, 39층 바로 밑 PIT층(설비 등 각종 배관이 지나가는 층) 벽체 또한 12일간 양생 후 11일 39층 바닥 슬래브 타설이 진행됐다"고 해명한 바 있다.
또 콘크리트가 완전히 굳기 전에 임시 기둥(일명 동바리)을 철거한 정황도 드러났다. 콘크리트 타설을 하면 하중을 견디기 위해 임시 지지대인 동바리를 촘촘히 설치해야하지만, 붕괴 사고 당시 동바리가 설치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부실시공사 '낙인'…주택시장서 사실상 '퇴출'
주택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HDC현산은 불과 7개월 사이 대형 참사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실상 퇴출 위기에 직면했다. 공공부터 민간까지 '아이파크' 보이콧 움직임이 전국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용섭 광주시장은 HDC현산에 대해 지역 내 '사업 배제'라는 초강수를 뒀다. 이 시장은 지난 13일 "광주시가 지역에서 추진하는 공공사업에 일정 기간 현산의 참여를 배제하는 방안을 법률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전날 HDC현산이 광주에서 진행 중인 전체 건축건설 공사에 대해 공사 중지 행정명령을 내린 데 이어 지역 정비사업에서 사실상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HDC현산은 현재 광주에서 화정 아이파크 주상복합을 비롯해 ▲계림동 아이파크 ▲학동 4구역 재개발 ▲운암 3단지 재건축 등 4곳에서 총 7948가구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운암3단지 재건축정비조합은 시공사 계약 해지를 검토하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2015년 9월 GS건설, 한화건설 컨소시엄을 구성해 운암 3단지 재건축 사업을 수주했다. 오는 3월 착공 예정이었으나, 조합원들이 시공사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HDC현산과 계약 해지를 검토하는 아파트 단지들도 전국으로 확산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 관양동 현대아파트 조합원들은 HDC현산의 재건축사업 참여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반대하고 있다. 현재 이 단지는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롯데건설과 HDC현산이 각각 200억원의 보증금을 내고 입찰에 참여했다.
또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으로 꼽힌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 조합원들도 안전 문제와 브랜드 가치 하락 등을 우려하고 있다. 둔촌주공 조합 관계자는 "조합원들이 HDC현산의 잇단 사고로 아파트 안전 문제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시공사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단지는 HDC현산을 비롯해 현대건설, 대우건설, 롯데건설이 컨소시엄 형태로 시공을 맡았다.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노형욱 국토교통부 장관이 HDC현산에 가장 강한 페널티(제재)를 주겠다고 시사했다.
노 장관은 이날 국토교통부 출입기자 간담회에서 "광주참사와 관련해 희생자 수습이 우선"이라며 "실종자 수습 이후 사고원인이 규명되는 대로 HDC현산에 대해서는 그에 맞는 합당한 처벌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노 장관은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발생 다음날 바로 조사위원회를 발족해 초기단계 증거자료 확보 및 관계자 청취를 하고 있으며, 경찰 수사도 동시에 진행 중"이라면서 "국토부는 공사 과정에서 안전관련 수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기술적인 문제는 없었는지를 비롯해 지난 학동참사와 같은 하도급·감리 등 문제는 없었는지 등을 밝힐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HDC현산의 사고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두 번 씩이나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현재 운영되고 있는 모든 법규와 규정을 동원해 내릴 수 있는 가장 강한 페널티를 줘야하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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