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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호 별세] "신라면·새우깡은 내 자식"...56년간 농심 이끈 '은둔의 경영자' - 조선비즈

입력 2021.03.27 10:57

은둔의 경영자…1965년 농심 창업, 56년간 경영
신라면·새우깡...히트작 개발부터 작명까지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너구리 한마리 몰고가세요’ 광고문구도 직접 개발
1980년 라면 스프 설비 조사 차 유럽 출장에 나선 신춘호 회장./농심 제공
"돌이켜보면 시작부터 참 어렵게 꾸려왔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 내 손으로 만들고 이름까지 지었으니 농심의 라면과 스낵은 다 내 자식 같다" - 신춘호 회장 저서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 中

27일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은 신라면, 짜파게티 등을 개발한 ‘라면왕’으로 불린다. 평생 라면과 스낵만 만들며, ‘K-푸드’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 회장은 1930년 울산에서 5남 5녀 중 다섯째이자 3남으로 태어났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9살 차이 나는 형제 사이다.

신 회장은 한국전쟁 때 의용 결찰로 군 복무를 마친 뒤 1957년 동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재학 중 학업과 함께 국제시장과 자갈치시장에서 장사를 배웠다. 당시 철 지난 쌀을 싸게 팔려다 실패한 뒤 식품의 가격보다 품질을 우선시하게 됐다.

평소 등산을 즐기던 신춘호 회장./농심 제공
1958년 일본 롯데 부사장을 맡았고, 1962년 일본 롯데 이사로 재직하던 중 라면 사업에 눈을 떴다. 큰형인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반대에도 1965년 롯데공업을 세우고 라면 사업을 시작했다. 1966년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방 공장을 준공한 후 본격적으로 라면을 생산했다.

신격호 명예회장이 ‘롯데’ 상호를 쓰지 못하게 막자 1978년 사명을 ‘농부의 마음’이라는 뜻의 농심으로 바꾸고 독자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별다른 히트 상품을 출시하지 못해 1970년대 초 존폐의 기로까지 몰렸다. 이후 일본 라면과 유사한 닭고기 육수 제품이 주를 이루던 시장에 소고기 육수로 만든 라면을 출시해 공전의 히트를 쳤다. 연이어 ‘너구리(1982년)’ ‘육개장 사발면(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신라면(1986년)’ 등 히트 상품을 줄줄이 출시하며 1991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 가마니 깔고 자며 새우깡 개발...제품 개발 직접 챙겨

신 회장은 평생 식품 사업에 매진하며 제품을 직접 개발했다. 1971년 출시돼 국내 최초의 스낵으로 기록된 새우깡의 경우 신 회장이 1년가량 공장에서 가마니를 깔고 자며 4.5톤 트럭 80대분의 밀가루를 사용한 끝에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라면시장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신라면도 신 회장의 뚝심에서 나왔다. 1986년 라면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신라면 시제품을 맛보던 신 회장은 "매운맛이 너무 강해 상품화가 어려울 것 같다"는 개발팀의 우려에 "독특한 매운맛이 천편일률적인 라면시장에 차별화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며 제품 출시를 밀어붙였다.

신춘호 회장이 2004년 덴마크 왕실 훈장 수훈을 받는 모습./농심 제공
신 회장이 제품명과 포장 디자인까지 일일이 챙긴 신라면은 출시 3개월 만에 3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라면은 ‘K-푸드의 원조’로도 유명하다. 지난해 100여개국에 440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제품 이름을 만들고 광고 전략도 직접 짰다. ‘신라면’은 자신의 성(姓)인 매울 신(辛)자를 따서 만들었고, '짜파게티'(짜장+스파게티)와 새우깡 등의 이름도 그의 대표작이다. "사나이 울리는 신라면" "너구리 한 마리 몰고 가세요" 등 광고 문구도 그의 작품이다.

◇ 농심 임직원에 ‘품질’ 강조…신 회장 "식품도 명품만 팔린다"

신 회장은 1992년 10월 농심 회장직에 오른 뒤 등기이사직을 맡아왔다. 언론에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은둔의 경영인으로 불렸다. 그룹 신년사도 창립 50주년이던 2015년이 돼서야 처음 직접 연설했다.

당시 그는 "우리는 1970년대 초 사활의 기로에서 ‘짜장면·소고기라면·새우깡’ 등 고정관념을 깬 신제품으로 위기를 극복했다"라며 "지난 50년 동안 이어온 혁신 본능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생수 '백산수'를 통해 글로벌 농심, 100년 농심을 이룩해 나가자"고 했다.

신 회장은 생전에 임직원들에게 ‘품질’을 강조했다. 1990년 해외 수출을 앞두고는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자"고 독려했고, 2021년 신라면 블랙 출시를 앞두고는 "식품도 명품만 팔리는 시대다. 까다로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신춘호 회장은 별세 이틀 전인 이달 25일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재선임되지 않으면서 경영에서 공식적으로 물러났다. 차기 농심 회장에는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인다. 신 부회장은 지난 25일 주총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신 부회장은 1997년 농심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데 이어 2000년에는 부회장으로 승진하며 사실상 농심 경영을 맡아왔다.

농심에선 신 회장의 세 아들인 신동원 부회장과 신동윤 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을 중심으로 승계 작업이 진행돼 왔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최대 주주인 농심홀딩스의 최대 주주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신동원 부회장의 농심홀딩스 지분은 42.92%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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