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경제신문 여헌우 기자] LG와 SK간 ‘배터리 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양사간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최종 결정이 나온 지 한 달이 넘었지만 배상금 협상은커녕 신경전만 계속되고 있다. SK 측이 ‘마지막 카드’인 미국 대통령 거부권에 사활을 걸면서 한동안 소모적인 논쟁은 계속될 전망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ITC가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대해 지난달 최종결정을 내린 이후 협상을 진행하고 있지만 배상금을 두고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LG가 3조~4조원을 거론하는 반면 SK가 1조원 안팎을 제안하는 것으로 알려져 접점을 찾기 힘들 전망이다.
ITC는 지난달 10일(현지시간) 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 인력을 빼가는 방식으로 영업비밀을 침해했다고 인정하고, 리튬이온배터리 수입을 10년간 금지하는 명령을 내렸다.
수세에 몰린 SK는 일단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ITC 결정에 대해 60일 이내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한은 다음달 11일(현지시간)까지인데, 김종훈 SK이노베이션 이사회 의장은 최근 미국에 체류하며 행정부와 정치권에 거부권 행사를 촉구하고 있다. 김 의장은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이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도 정기 주주총회 의장석까지 비워두고 미국에서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며 설득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배터리 분쟁과 관련해 법적 조언을 받기 위해 최근 샐리 예이츠 전 미국 법무부 부장관을 미국 사업 고문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급기야 SK이노베이션은 ITC 결정이 "재앙적"이라며 미국 배터리 공장을 포기할 수 있다는 의사까지 내비쳤다. SK는 ITC 결정을 유예해달라는 청원을 통해 "위원회의 이번 명령은 결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포기(abandonment)로 이끌 것이고, 이 프로젝트가 창출할 수천 개의 일자리와 환경적 가치가 사라져 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불발될 경우 연방순회항소법원에 항소한다는 방침이다. LG와의 ‘배터리 전쟁’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이처럼 양사간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것은 지난달 ITC 결정을 두고 양측이 서로 달리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달 ITC 결정으로 SK이노베이션이 LG의 핵심 인력을 빼내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는 입장이지만, SK이노베이션은 증거훼손 등 ITC 증거개시 절차상의 문제로 ‘파울패’를 당한 것이지 영업비밀 침해 여부는 다투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최근 개최된 양사 주주총회 현장에서도 이 같은 입장차가 확인됐다. 25일 열린 LG화학 주주총회에서 신학철 부회장은 "국제무역 규범에서 존중받는 ITC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고, 글로벌 분쟁 경험 미숙으로 일어난 일로 여기는 것으로 보여 안타깝다"며 "이번 사안을 유야무야 넘길 수 없고, 피해규모에 합당한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일침했다.
SK이노베이션은 다음달인 26일 주총에서 "ITC가 문서관리 미흡을 이유로 사건의 본질인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한 사실관계를 판단하지 않은 채 경쟁사의 모호한 주장을 인용한 점은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 주주총회가 끝난 뒤 LG에너지솔루션은 별도의 입장을 내고 "아직까지 ITC 결정 내용을 인정하지 않고 구체적인 사실까지 오도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며 "소모적 논쟁을 하지 말고 판결문에 적시된 영업비밀 리스트 관련 증거자료를 양사가 직접 확인하자"고 반박해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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