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영면에 든 농심 창업주 신춘호 회장(91)은 생전 ‘작명의 달인’으로도 이름을 날렸다. 농심의 많은 히트 상품이 그가 지은 이름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1986년 출시된 농심의 대표 상품 ‘신라면’은 고 신춘호 회장이 본인의 성을 따서 이름을 붙였다. 시장에선 ‘매운(辛) 라면’으로 통했지만, 태생부터 ‘회장님 라면’이었던 셈이다. “사나이 울리는 농심 신라면”이라는 오래된 광고 카피도 고인이 직접 만들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신라면의 전 과정에 깊이 관여했다고 한다. 당시 제품 출시에 앞서 열린 시식회에서 “매운맛이 너무 강해 잘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우려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신 회장이 “독특한 매운맛으로 승부하자”고 개발팀을 격려했고 제품 출시를 밀어붙였다고 한다. 당시 신라면 개발에 참여했던 한 연구원이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술회한 당시 풍경이다. 1991년 ‘1등 라면’이 된 신라면은 지금까지 한번도 그 자리에서 밀려나지 않았다. 1971년 출시된 ‘새우깡’은 우연히 딸의 노래에서 힌트를 얻었다. 고인은 당시 어린 딸(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인 신윤경씨)이 ‘아리랑’을 ‘아리깡~ 쓰리깡~’이라고 부르는 것에 영감을 얻어 아이들도 말하기 쉬운 ‘새우깡’이라고 작명했다. 1971년 12월 새우깡이 출시될 당시 농심은 판매 부진과 미수금 누적 등으로 회사는 매각 위기까지 몰려 있었다. 이때 ‘소고기 라면’과 함께 신제품으로 등장한 새우깡이 소비자들로부터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농심은 다시 사세를 키워나갈 수 있었다. 이밖에도 입에 착붙는 너구리(1982년), 안성탕면(1983년), 짜파게티(1984년) 등도 모두 그가 직접 만든 이름이다. 신 회장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 됐다. 지난해 10월 옥수수깡 출시를 앞두고 신 회장은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말했다고 농심 쪽은 전했다.
농심의 너구리와 짜파게티를 함께 끓인 ‘짜파구리’는 지난해 내내 화제가 됐다. 한겨레> 자료사진
신 회장은 지난해 작고한 롯데그룹 창업주 고 신격호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기도 하다. 1965년 롯데공업을 설립하며 신춘호 회장도 본격적인 경영활동에 나섰지만, 신 명예회장이 반대했던 라면 사업을 추진하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이후 1978년 롯데공업이 사명을 농심으로 바꾸면서 롯데와 결별했다. 신격호 회장 별세 때까지 형제는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고 한다. 신춘호 회장이 1999년 펴낸 자서전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에서 그의 라면사업 진출 사연을 엿볼 수 있다. 1960년대 초, 형인 신격호 회장이 경영하던 일본의 ㈜롯데 이사로 일하던 그는 라면시장 진출을 결심한다. “형님, 새로운 사업으로 라면을 해보려 카는데 형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라면이라 했나. 그거 누가 사서 묵을 끼라고 만들라 카는데. 치아라 마.” 형의 말을 듣고 신춘호 회장은 오히려 오기가 생겨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고인은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니,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고인은 별세 이틀 전, 공식적으로 농심의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지난 25일 농심이 정기주주총회에서 고인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지 않으면서다. 이로써 56년 만에 경영활동을 매듭지었다. 차기 농심 회장은 고인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오를 전망이다. 고인이 마지막으로 지켜본 농심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농심의 연결 기준 매출액은 2019년과 견줘 12.6% 증가한 2조6398억원, 영업이익은 103.4% 늘어난 1603억원이다. 전체 매출의 40%가 외국에서 나왔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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