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 충전구에 커넥터를 통해 헤어 드라이어를 연결한 모습
현대자동차가 아이오닉5의 실물을 오프라인에서는 처음으로 공개했다. 아이오닉5는 첫날 사전계약만 2만3760대로 초반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지만, 아직 정식 출시가 되지 않은 만큼 차량의 세부적인 면면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지난 17일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5 스퀘어에서 차량을 직접 살펴봤다.
서울 용산구 아이오닉5 스퀘어에 전시된 아이오닉5
아이오닉5 흥행의 배경에는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차박’ 열풍이 자리잡고 있다. 전기차는 시동을 걸지 않아도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 수 있고 실내 공간 활용도가 높아 차박에 최적화돼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대차도 캠핑 애호가들을 주된 타깃 고객층으로 삼고 있다. 실제로 아이오닉5를 구매할 때 선택 가능한 커스터마이징 품목 중에는 캠핑 체어와 캠핑 트렁크, 미니 냉장고 등 캠핑족을 겨냥한 아이템이 많다. 특히 V2L(Vehicle to Load)은 차박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됐다. V2L은 차량 배터리를 일종의 보조 배터리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이다. 전기를 마음껏 쓰기 위해서는 무겁고 비싼 파워뱅크를 들고 다녀야 했던 캠핑족들에게 반가운 기술이다. 테슬라 등 다른 제조사의 전기차에는 없는 옵션이다. 아이오닉5의 V2L은 3.6kW(3600W)의 전력을 제공하는데, 전기장판(70W), 미니 냉장고(65W), 노트북(80W) 등 제품의 일반적인 소비 전력을 고려하면 합격점이라는 평가다. 아이오닉5에서 V2L 기능은 기본적으로 차량 외관의 충전구를 통해 사용할 수 있다. 충전구에 일반 전기기기를 연결하기 위해서는 직류를 교류로 바꿔주는 커넥터가 필요한데, 이는 차를 구매할 때 기본으로 제공된다. 반면 실내 V2L은 커스터마이징 품목으로, 선택할 시 가격이 비싸진다. 구체적인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2열 시트 중간 아래에 커넥터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220V 콘센트가 설치된다.
실외와 실내 V2L은 동시에 쓸 수 있다. 멀티탭을 이용하면 3.6kW를 넘지 않는 선에서 3개 이상의 전기기기를 한꺼번에 연결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배터리 잔량을 고려한 실사용 전력은 기대에 못미칠 수 있다. 롱 레인지의 배터리 용량은 72.6kWh로, 이론상 완충 상태에서 3.6kW의 전력을 20시간 쓰면 방전된다. 문제는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다. 최근 현대차 스위스 법인이 밝힌 아이오닉5 롱 레인지(사륜 구동)의 주행거리는 유럽 기준(WLTP) 430㎞다. 같은 사양이라면 국내 인증 주행거리는 400㎞를 밑돌 가능성이 높다. 실외 V2L을 쓸 때 바깥에서 배터리 잔량을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충전구 옆에는 네모난 칸 10개가 4열로 배치돼 있는데, 배터리 잔량에 따라 불이 들어온다. 다만 칸이 아닌 열 단위로 점등돼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다. 배터리 잔량이 76∼100%면 모든 열에, 51∼75%면 열 3개에 불이 들어오는 식이다.
전기차만의 특징인 앞쪽 트렁크는 실용성이 떨어져 보였다. 사륜 구동 모델의 경우 앞쪽 트렁크 적재 공간은 24ℓ에 그친다. 중간에 단차가 있어 이마저도 활용에 한계가 있다. 얇은 상·하의와 운동화 한 켤레를 넣으니 거의 꽉 찼다. 뒤에만 모터가 있는 후륜 구동 모델은 앞쪽 트렁크 공간이 57ℓ다. 차박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평탄화’도 아쉬웠다. 2열 시트 등받이는 시트 하단의 레버를 당긴 상태에서 수동으로 조절할 수 있다. 앞으로 끝까지 접어도 180도로 평탄해지지는 않았다. 약 10도의 각도 차이가 났다.
실내 디스플레이에서는 내연기관차 운전자들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하게 애쓴 흔적이 보였다. 얼리 어답터 고객층을 점령한 테슬라와는 차별화하겠다는 의지도 읽힌다. 테슬라는 태블릿 PC를 닮은 하나의 터치스크린에서 거의 모든 조작을 하도록 돼 있다. 내연기관차에 익숙한 일부 운전자들은 불편을 호소하는 반면, 조작이 일원화돼 있고 스마트폰과 흡사하다는 장점도 있다. 인터넷 브라우저나 넷플릭스도 터치스크린에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다. 때문에 ‘미래의 자동차는 거대한 스마트폰’이라는 개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실현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현대차 아이오닉5에는 물리적 버튼이 대부분 남아 있다. 볼륨 조절 버튼과 지도·내비게이션·미디어 등 바로가기 버튼 모두 터치가 아닌 물리적 버튼이다. 각종 버튼의 위치도 기존 내연기관차와 엇비슷하다. 전반적으로 안정적인 경험을 선호하는 보수적인 고객층을 의식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햅틱 터치 버튼을 배치할 예정인 기아의 EV6와 고객층이 겹치지 않게 하려는 의도도 엿보였다.
아날로그 감성을 겨냥한 특이한 요소들도 눈에 띄었다. 디스플레이 왼편에는 마그네틱 대시보드가 배치됐다. 자석을 이용해 사진이나 메모를 고정시킬 수 있다. 디테일 측면에서는 다소 투박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내연기관차의 센터 콘솔에 해당하는 ‘유니버셜 아일랜드’가 대표적이다. 앞서 현대차는 유니버셜 아일랜드의 경우 최대 14㎝ 후방 이동이 가능해 2열 시트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확인해보니 밑에서 레버를 당긴 채 직접 밀어야 하는 수동식인데, 다소 뻑뻑해 양손을 다 써서 힘을 충분히 줘야 움직였다.
선택 품목인 디지털 사이드 미러는 의도를 읽기 어려웠다. 일단 카메라 크기가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사이드 미러와 비슷해 공기 저항을 줄이는 효과는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또 주차된 상태에서 사이드 미러를 완전히 접어도 전폭이 거의 줄지 않았다.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 입장에서 위험해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글·사진 이재연 기자
ja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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