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 까르띠에 손목시계처럼 보이는 애플워치. 페이스(배경화면), 스트랩, 케이스를 까르띠에 스타일로 바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오늘은 까르띠에, 내일은 롤렉스 손목시계 한번 차볼까.”
직장인 박모(29)씨는 최근 애플워치를 꾸미는 재미에 빠졌다. 페이스(배경화면)뿐 아니라 스트랩(시곗줄)을 바꿔가며 매번 새로운 명품 시계를 만든다. 롤렉스·까르띠에·에르메스·샤넬·구찌·파텍필립·카시오 등 없는 브랜드가 없을 정도. 가장 선호하는 조합은 롤렉스의 쥬빌레 스타일로 클래식한 정장 차림에 잘 어울린다. 캐주얼 차림에 나이키 운동화를 신을 때는 카시오의 전자시계 스타일이 화룡점정이 된다고 한다.
박씨는 “날마다 옷차림에 맞춰 수십 가지 시계를 바꿔 착용하는 기분”이라며 “공상과학(SF) 영화처럼 몇번의 클릭만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시계로 변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스마트워치가 일종의 패션 아이템이 되면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자가 직접 시계를 맞춤형으로 제작(커스터마이징)하는 ‘애플워치 꾸미기’가 유행이다. 배경화면과 줄, 테두리 케이스를 취향대로 디자인해 ‘나만의 시계’를 만드는 것이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 스타일로 꾸민 애플워치.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방법은 간단하다. ‘클락콜로지(Clockology)’와 같은 무료 다운로드가 가능한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온라인 커뮤니티나 페이스북 페이지 등에서 공유되는 파일을 앱에 적용하면 된다. 롤렉스와 같은 전형적인 명품 시계 디자인뿐 아니라 카시오·세이코 등 전자시계 인터페이스를 응용한 디자인도 인기다. MZ세대가 열광하는 복고(레트로) 감성을 최첨단 기기인 스마트워치에 녹인 셈이다.
클락콜로지 앱을 통해 다양한 롤렉스의 페이스(바탕화면)를 입힐 수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애플워치의 배경화면만 바꾸는 건 무료지만, 스트랩이나 케이스 등 액세서리까지 새롭게 부착할 경우에는 돈이 꽤 들 수 있다. 심지어 배보다 배꼽이 비싼 경우도 있다. 애플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애플워치 시리즈3 모델은 25만9000원인데, 에르메스 가죽 스트랩은 71만9000원으로 세 배 더 비싸다. 애플워치 전체를 감싸 일반 시계와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주는 스웨덴 골든콘셉트의 케이스는 약 68만~295만원 선이다.
명품 브랜드에서 애플워치용 액세서리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탈리아 하이주얼리 브랜드 ‘다미아니’가 선보인 파베(pavé : 천연석을 깔아 메우는 방식) 다이아몬드로 세팅된 화이트 골드 케이스는 964만원에 판매 중이다.
국내 스마트워치 판매량.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애플워치 사용자들은 굳이 애플 정품이 아니더라도 중국 온라인 쇼핑사이트에서 저렴하게 스트랩과 케이스를 구매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학원생 정모(27)씨는 “줄질(애플워치 줄 바꾸기)에 한 번 빠지면, 서너개 구매해서는 성에 안 차기 때문에 매번 비싼 스트랩을 사기는 힘들다”며 “알리익스프레스(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에서는 가죽 스트랩도 개당 몇천원이면 살 수 있기 때문에 한 번에 10개씩 주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맞춤 제작 인기에 힘입어 스마트워치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시장 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한국의 스마트워치 판매량은 지난해 91만2000대를 기록했다. 2016년엔 48만9000대였는데 4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스웨덴 애플 전문 액세서리 브랜드 골든콘셉트가 선보인 애플워치 케이스. 가격은 103만원 정도다. 사진 골든 콘셉트
MZ세대가 자칫 ‘짝퉁’ 취급받을 수 있는 ‘롤렉스 입힌 애플워치’를 당당하게 착용하는 이유는 재미있고, 기발한 조합과 아이디어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기성품을 개성에 맞춰 꾸미고 싶은 욕구의 표현일 뿐, 샤넬백 대신 샤넬 쇼핑백을 사서 들고 다니는 풍조와는 결이 다르다는 얘기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청년들은 젠더 갈등, 높은 실업률, 코로나19 등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에 처해있기 때문에 가볍게 웃고 즐길 수 있는 코미디적인 요소, B급 정서를 제공하는 소비재에 지갑을 연다”며 “정품 롤렉스를 못사니 짝퉁 시계라도 착용해 보려는 자격지심이 아니라, 수천만 원 짜리 시계와 다를 바 없이 보이는 애플워치를 보면서 타인과 웃고 떠들며 삶의 재미를 찾는 행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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