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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비만 5억, 폐업 꿈도 못꿔요" 처치곤란 주유소 급증 - 매일경제

◆ 위기의 주유소 ◆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한 대형 주유소가 철거되고 있다. 주유소가 철거된 용지는 새 용도로 개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주형 기자]
사진설명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는 한 대형 주유소가 철거되고 있다. 주유소가 철거된 용지는 새 용도로 개발될 것으로 알려졌다. [한주형 기자]
# 경기 포천시에 있는 A주유소는 폐업 후 수년째 방치돼 있다. 캐노피(주유소 지붕)는 물론 지하저장탱크 등이 고스란히 흉물로 남아 있다. 폐업 후 이처럼 방치돼 있는 이유는 바로 비용 부담 때문이다. 주유소 폐업에는 시설물 제거 비용과 토양 오염 정화 비용 등으로 적게는 1억원, 많게는 5억원까지 든다. 경영난으로 폐업한 주유소는 이 비용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전국에는 폐업 후 방치된 주유소가 산재해 있다.

# 서울 은평구에 있는 B주유소는 전기차 충전기 설치를 검토했다가 결국 접었다. 급속충전기 설치 비용이 대당 1500만원 정도인데, 정부 보조금을 절반가량 받아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아직 동네에는 전기차 운전자가 많지 않다 보니 수익도 불투명하다. 주유 시설과 전기차 충전기 간 거리 확보도 걸림돌이 됐다. 주유소 관계자는 "주유소들이 변신을 거듭한다고 하지만, 자영 주유소 사업자는 사업을 접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주유소가 매년 빠르게 줄어드는 가운데 주유소 수익성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 10일 에너지 부문 탄소중립을 위해 2025년까지 94조원 이상을 투자한다고 밝히며 주유소의 '친환경 에너지 슈퍼스테이션'으로의 전환도 포함시켰으나 업계에서는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40년까지 8000개 이상 주유소가 시장에서 퇴출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9년간(2011~2019년) 국내 주유소 영업이익률은 1.8~2.52% 수준이다. 도·소매업 평균 영업이익률(4%대) 대비 절반 수준이다. 2019년 광공업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체 주유소의 14.6%(2002개)가 연 매출 10억원 이하, 평균 영업이익이 2600만원에 그치며 한계 주유소로 내몰렸다.


정부가 1991년 주유소 거리 제한 완화에 이어 1995년 주유소 거리 제한을 철폐하면서 국내 주유소는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후 유가 인하 정책의 일환으로 2011년 알뜰주유소가 도입됐는데 이는 정유사 폴을 달고 영업하는 주유소에 치명타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 국내 주유소는 2010년을 정점으로 매년 100여 개씩 감소하고 있다.

영업난이 심화되자 주유소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서고 있다. 비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2011년 12월 352개였던 셀프 주유소는 2021년 11월 기준 4745개로 급증했다. 10년 사이 13.4배로 늘어났다.

주유소 업계 관계자는 "서울 등 대도시에서 살아남은 주유소나 새로 오픈하는 주유소는 셀프 주유소로 전환하고 있다"며 "셀프 주유소로 전환할 여지가 없는 지방 소규모 주유소들은 가족 경영으로 버티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변신을 꾀하는 업체들도 급속히 늘고 있다. 전기차·수소차 충전소 설치 등 복합에너지 스테이션으로의 전환 시도는 물론 주유소 내 패스트푸드점 설치, 세차 서비스, 물류 거점 사업 도입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자영 주유소 사업자가 가장 고민하는 건 복합에너지 스테이션이다. 친환경 모빌리티 시대가 다가오지만,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자니 비용이 부담되고 관련 규제로 설치마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위험물안전관리법에 따르면 주유소 내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려면 기존 주유기와 1m 이상 간격이 필수다. 또 전기차 충전설비의 분전반은 고정주유설비에서 6m, 전용탱크 주입구 중심선에서 4m 등 거리가 확보돼야 한다. 현재 이 같은 규정으로 인해 대부분 주유소는 전기차 충전기를 설치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기차 1대 완충에 통상 30분은 걸리는데, 충전기 1대 놓고 장사할 바에는 차라리 안 하겠다는 계산이다.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는 "전기차 시대에도 주유소 기반의 충전 인프라가 중요한 만큼 현재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 초기 사업자들을 위한 지원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기차 충전 시간 동안 운전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주유소 내 음식점 허용 등의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국내에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상황도 불안 요인이다. 올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서 주유소 판매량은 회복 추세를 맞았다. 하지만 최근 대규모 확진자 발생으로 이동량이 줄면서 주유소 업계는 다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전국 주유소 판매량은 3686만6426㎘로 전년도(3765만8684㎘) 대비 2.1% 감소했다. 코로나19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는 "한계 주유소 속출 원인이 과거에는 과당경쟁이었다면 지금은 수송에너지 전환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수소차·전기차 시대가 와도 현재 주유소들은 에너지를 공급할 수 있는 최적의 인프라라는 점이 고려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관리원 2018년 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 6월까지 총 850개 주유소가 지위 승계 없이 폐업했다.

[이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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