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삼성은 가야 할 길을 계속 가야 합니다.
이미 국민들께 드린 약속들은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분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삼성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8일 파기환송심 실형 선고 이후 처음으로 삼성 임직원들에게 전한 ‘옥중 메시지’다.
이 메시지에서 확인되는 이 부회장의 의지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이미 작년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약속한 ‘준법 경영’, 재계 1위 기업 삼성이 책임지고 이어가야 할 ‘투자와 고용’이 그것이다.
준법 경영은 삼성 내부의 숙제라고 치더라도, 투자와 고용 창출은 삼성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근간이 되기에 한시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특히 삼성 입장에서는 ‘총수 부재’ 기간 자칫하면 ‘글로벌 삼성’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투자와 고용을 멈출 수 없다.
가장 큰 과제는 이 부회장이 2019년 4월 화성사업장에서 공언한 ‘반도체 비전 2030’이다. 이 부회장은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분야 R&D 및 생산시설에 133조원을 투자하고, 전문인력 1만5000명을 채용해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포부를 드러냈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부재로 인해 반도체 비전 2030이 흔들릴 위기에 처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점유율 세계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올해만 최대 280억 달러(약 30조9000억원)를 설비투자에 쏟는다고 선언했다. 이는 전년 대비 62% 증액한 규모다. 사실상 유일한 파운드리 경쟁사인 2위(점유율 17%) 삼성전자를 완전히 따돌리겠다는 의지다. TSMC는 지난해 5월에는 120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5나노미터(㎚) 공정의 신공장을 짓기로 결정, 오는 2024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현지 장비 업체와 협업하면서 기타큐슈에 공장 신설을 검토 중이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올해 이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를 돌파할 경우, TSMC에 버금갈 만한 투자계획을 발표할 것이라 기대했었다. 하지만 대규모 투자는커녕 당장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렵게 되면서 TSMC와의 격차가 커질 것이란 우려다. TSMC가 현재 세계 파운드리 점유율 면에서 삼성의 3배를 넘어서며 압도적인 지위를 굳힌 것 역시 지난 2017년 이 부회장의 부재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크다.
삼성은 이 부회장이 부재했던 1년간 제대로 된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지 못했다. 굴직한 인수합병(M&A) 건은 완전히 중단됐다. 2016년 11월 미국의 전장(자동차 전자장치) 전문기업 ‘하만(Harman)’을 9조원에 인수한 이후 새로운 M&A는 단 한 건도 없다. 게다가 이미 인수한 크고 작은 기업들도 이 부회장이 부재했던 한 해 동안 시너지 효과를 못냈던 것이 사실이다. 총수 부재 기간 오너십을 갖고 주도적으로 업무를 나누고 힘을 실어줄 사람이나 조직이 없었던 탓이 컸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 부회장이 2019년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비전을 내세웠는데, 앞서 1년여간 이 부회장 부재가 없었다면 관련 계획은 더 일찍 실행돼 TSMC를 지금보다 더 크게 따라잡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이런 위기감을 의식한 듯 이 부회장도 반도체 비전 2030 발표 당시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적재적소에 투자와 인력이 투입돼도 단 시간에 성과를 내기 힘들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는 선제적인 투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지금 총수 부재 상황에서 삼성의 투자가 미뤄진다면, 시스템반도체 1위 목표는커녕 업계에서 도태되는 최악의 암흑기가 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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