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유지분 전량 매각…포스코도 해운업 진출 의지
HMM(옛 현대상선)이 5년여 만에 민영화될 전망이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해운 경기가 회복된 현 시점을 HMM 매각의 적기로 보고 있다. 사진은 HMM이 지난해 진수한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알헤시라스호. 한경DB
정부 고위 관계자는 27일 “산은이 HMM의 민영화 방안을 최근 기획재정부에 보고했다”며 “기재부 중심으로 소관 부처와 함께 본격적인 검토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에 따르면 산은은 포스코를 HMM의 최적 인수 후보로 꼽고, 비밀리에 협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는 지난해 물류 자회사 설립을 검토하는 등 해운업 진출에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채권단 관리하에 두기보다는 HMM을 민영화해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산은은 2018년에도 포스코와 HMM 매각 협상을 벌였지만 무산됐다.
산은은 HMM 지분 12.61%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2대 주주는 신용보증기금(지분율 7.51%), 3대 주주는 해양수산부 산하 해양진흥공사(4.27%)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함한 매각대금은 1조~1조5000억원가량으로 추정된다.
이번 딜이 성사되면 HMM은 2016년 10월 산은 자회사로 편입된 지 5년여 만에 민영화에 성공하게 된다. 현대그룹 주력 기업이던 HMM은 해운업 불황에 따른 막대한 적자로 2016년 10월 현대그룹에서 계열분리됐다. 산은 자회사로 편입돼 3조원 이상의 자금이 투입됐지만 2016년부터 2019년까지 2조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지난해 해운업 호황으로 21분기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하는 등 8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최대주주 산업은행, 보유지분 전량 매각 추진
2016년부터 3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투입됐지만 실적은 나아지지 않았다. 2016년 8333억원의 적자를 낸 데 이어 2019년까지 총 2조982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파산한 한진해운 출신 인력도 대거 영입했지만 효과를 내지 못했다. 산은이 2018년 초 포스코 등 일부 대기업에 HMM 인수를 비밀리에 제안했지만 곧바로 거절당했던 것도 계속기업으로서 HMM의 역량에 의문이 컸기 때문이다.
산은은 HMM을 더욱 강하게 압박했다. 이 회장은 2018년 11월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HMM엔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가 만연해 있다”며 “안일한 임직원은 즉시 퇴출할 것”이라고 강하게 질타했다. HMM 임원진을 모두 산은 여의도 본사에 불러 매주 경영 현황을 보고하도록 했다. 이듬해 2월엔 임기 2년이 남은 유창근 HMM 사장이 물러났다. 산은의 직·간접적인 압박에 따른 것이다.
산은은 해운업 시장 호황을 맞아 HMM의 경영 정상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지금이야말로 민영화의 적기라고 보고 있다. 산은 체제에 오랫동안 있을수록 혁신 마인드가 실종된 채 공기업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이 회장의 지적이다.
시장에선 막대한 자금력을 보유한 포스코가 HMM을 인수하면 다양한 분야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운업 진출은 포스코그룹의 오랜 숙원이다. 물류 효율화를 통해 비용을 줄이는 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철강사인 포스코는 연간 약 1억6000만t의 철강 원자재와 제품을 배로 실어나른다. 종합상사인 포스코인터내셔널이 들여오는 물류도 연간 수천만t에 이른다. 포스코그룹이 미래 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는 포스코케미칼의 2차전지 소재(양극재 음극재 등) 수입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그룹 계열사를 포함한 연간 전체 물류비는 총매출 대비 10% 수준으로 작년에만 6조원에 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포스코가 직접 해운업에 뛰어들면 계열사별로 쪼개져 있는 물류 업무를 통합해 연간 수조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스코그룹의 재무적 여력도 충분하다. 작년 3분기 말 기준 포스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는 6조7691억원에 달한다. HMM의 몸값으로 추정되는 1조~1조5000억원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 올해 해운업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정가’에 인수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산은의 요청을 검토 중인 정부도 긍정적인 분위기다. 현재 해운업계는 초대형화 경쟁이 치열하다. 작년 4분기 이후 전 세계 조선소에 발주된 2만TEU(1TEU=20피트 컨테이너 1개)급 이상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30척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부 관계자는 “HMM은 선복량을 늘리면서 ‘규모의 경제’를 키워야 한다”며 “포스코는 해운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갈 수 있는 적임자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강경민/최만수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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