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망토' 만드는 메타물질로 스마트폰 카메라 크기 확 줄인다 - 한국경제

포스텍 등 초박막렌즈 개발

기존 굴절렌즈 두께(왼쪽)와 연구팀이 개발한 초박막 메타렌즈 두께(오른쪽) 비교.

스마트폰, 자율주행자동차 라이다(레이저 기반 센서) 등에 들어가는 카메라 크기와 무게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원천기술이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노준석 포스텍 기계공학과 교수와 한승훈 삼성전자종합기술원 이미징디바이스랩 마스터, 이헌 고려대 신소재공학부 교수 등 공동 연구팀이 ‘평면 초박막렌즈’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1일 발표했다. 인공 소재인 메타물질(metamaterial)과 나노프린팅 기법을 활용해 적외선 카메라 등에 쓰이는 렌즈 두께를 1만분의 1까지 줄일 수 있는 신기술이다. 메타물질은 자연물질의 배열과 구조를 인공적으로 바꿔 빛이나 음파 등을 특이하게 반사 또는 굴절시키도록 만든 신소재를 두루 말한다. 빛이나 파장을 자연적 물리 법칙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기 때문에 ‘투명인간’을 만드는 투명 망토,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스텔스기, 고해상도 홀로그램 등 공상과학 영화에 나올 법한 일에 응용할 수 있어 세계적으로 연구 경쟁이 치열한 분야다.

노 교수는 “드론, 무인차 등 자율주행 기술이 진보하면서 라이다 등에 필요한 초박막렌즈의 수요가 높아지고 있지만 크기와 무게를 줄이는 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신기술은 2025년까지 50억달러 규모로 성장이 예상되는 메타렌즈 시장을 선점하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렌즈 두께의 '1만분의 1'…카툭튀 해결, 성능도 잡았다
'혁신 신소재' 불리는 메타물질…나노프린팅 통해 굴절렌즈 제작

세계경제포럼(WEF)은 2019년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칠 10대 미래 유망기술’ 중 하나로 ‘소형 장치를 위한 작은 렌즈 기술’을 선정했다. 스마트폰, 자율주행차, 드론 등 쓰임새가 광범위한 데다 수요까지 폭발할 것이란 이유에서다. 포스텍과 삼성종합기술원, 고려대가 공동 개발에 성공한 ‘초박막 메타렌즈 원천기술’은 경쟁국보다 한 발 빨리 초소형 렌즈 상용화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기술은 메타물질을 활용한 소형 장치용 작은 렌즈(메타렌즈) 제작 기술이다. 메타물질은 비금속, 고분자 등을 조합해 탄생시킨 인공 물질을 통칭한다. 자연적 물리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소재다. 보통 실리콘, 질화갈륨(GaN), 산화티타늄 등의 내부 구조를 변형해 만드는데, 빛이나 음파 등을 굴절 반사하는 특성이 완전히 다르다. 스마트폰뿐 아니라 자율주행차, 군용·의료용 카메라, AR(증강현실)·VR(가상현실) 글라스 등에 적용하는 기술 연구가 활발하다.

굴절렌즈는 스마트폰, 디지털 일안반사식(DSLR) 카메라 등 전자·광학기기의 핵심 부품이다.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렌즈는 이미지 왜곡을 줄이기 위해 8~9개 굴절렌즈로 구성한 복합렌즈(일명 광학계)를 사용한다. 오목렌즈, 볼록렌즈, 줌(확대·축소용)렌즈 등을 섞어 제작한다.

그런데 렌즈 수를 늘리다 보면 부피, 무게가 증가한다. 부피를 줄이면 반대로 카메라 성능이 떨어진다. 일부 스마트폰 브랜드가 카메라 부위가 튀어나오는 비호감 디자인을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다. DSLR 카메라에 쓰이는 렌즈 무게는 고성능군으로 가면 4㎏에 육박한다. 이른바 ‘카툭튀(카메라가 툭 튀어 나옴)’를 방지할 얇고 가벼운 렌즈 수요가 증가하는 이유다.

연구팀은 고성능이면서 부피가 작은 렌즈를 개발하기 위해 메타물질을 연구해왔다. 기존엔 메타물질을 제작할 때 ‘전자빔 리소그래피’를 주로 활용했다. 전자빔 리소그래피는 강한 전압을 건 전자빔을 쏴 기판 위 물질에 나노 패턴을 새겨 신소재를 만드는 공법이다. 반도체를 제작할 때 쓰이는 공정인 자외선 리소그래피보다 이론적으로 더 미세한 패턴을 새길 수 있고, 공정 자유도가 높다. 그러나 속도가 느려 원가가 올라가는 단점이 있다. 연구팀은 수년간 반복 실험 끝에 50㎚(나노미터) 크기의 실리콘 나노입자를 열경화성 레진에 분산시켜 새로운 메타물질을 개발했다. 이 신소재의 광 특성을 측정한 결과 적외선 영역(940㎚)에서 높은 굴절률(2.2)을 보였다. ‘고굴절 메타물질’ 제작에 적합한 재료가 만들어졌다는 뜻이다. 별도의 식각·증착 없이 단 한 번 프린팅으로 메타물질을 제작할 수 있는 새로운 공법도 확보했다.

연구팀은 제작한 신소재를 나노프린팅 공정에 적용해 지름 4㎜, 두께 1㎛(마이크로미터) 이하 메타렌즈를 제작했다. 현재 적외선 카메라에 들어가는 1㎝ 안팎 두께의 굴절렌즈보다 1만분의 1 이상 얇다. “이 메타렌즈와 적외선 이미지센서를 결합해 카메라를 만들어 사람 손을 촬영하니 피부 속 혈관 분포가 훤히 보였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노준석 포스텍 기계·화학공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메타물질 전문가로 꼽힌다.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를 졸업하고 미국 UC버클리 기계공학과 박사과정에 있을 때부터 메타물질 관련 원천기술을 개발해왔다. 미국 로렌스버클리연구소, 아르곤연구소 등을 거쳐 2014년부터 포스텍에서 재직하고 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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