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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금 지원보다 교육·직업훈련 늘려라" 세계적 석학의 조언 - 한국경제

희망 2021 대한민국 다시 뛰자
한경 신년 인터뷰 - 베리 아이컨그린 UC버클리 교수

저소득층 코로나 지원금은 단기 처방
기술 제공해 생산성 높이게 해줘야

현금 쥔 미국인들 소비 대신 저축
돈 풀었지만 경기 회복 어려울 수도

中 발전해도 개방·민주화는 요원
차기 바이든 정부가 풀어야 할 숙제

"한국, 현금 지원보다 직업훈련 늘려라" 세계적 석학의 조언
국제 경제·금융정책 석학으로 손꼽히는 배리 아이컨그린 미국 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미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또다시 9000억달러의 부양 자금을 풀었지만 기대만큼 경기를 회복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금을 손에 쥔 미국인들이 더 큰 불경기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 대신 저축을 늘릴 것이란 예상에서다.

아이컨그린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중국의 경제 발전이 더 많은 개방과 민주주의를 유도할 것이란 기대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며 “차기 조 바이든 정부가 풀어야 할 어려운 숙제”라고 했다.

임기를 2주일여 남겨놓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 대해선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외교정책은 오류투성이였다”며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낙인찍은 건 미국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코로나19 사태 후 미국 한국 등 각국에서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는 만큼 교육 및 직업훈련 투자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이 대규모로 공급되고, 추가 부양 자금도 풀리고 있습니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데요.

“대부분 백신이 보급된 뒤 미국 경제가 다시 활기를 띨 것으로 생각하는 듯합니다. 저는 견해가 좀 다릅니다. 덜 낙관적이죠. 백신 보급이 막 시작됐지만 집단면역까지는 길고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할 겁니다. 미국 내에서 백신 접종을 다 마치려면 1년 가까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왜 속도를 더 내지 못하는 걸까요.

“가장 큰 원인은 미국 공중보건 시스템이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당히 분산돼 있어 지역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이지요. 미국처럼 고도로 분산된 보건체계를 갖고 있는 국가들은 똑같습니다. 다행인 점은 백신의 효용 및 안전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줄어들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입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처리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만약 (트럼프를 지지하는) 7000만여 명의 유권자가 백신 접종을 단체로 거부하면 미국은 결코 집단면역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백신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있는 만큼 시간이 걸리더라도 결국 극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인에게 현금을 직접 주는 부양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요.

“한계가 분명할 거라고 봅니다. 현금을 받더라도 과거처럼 왕성한 소비 습관을 되찾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죠.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직후 경제 충격이 닥치자 너도나도 ‘예방적 저축’에 나섰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번에도 돈을 쓰지 않고 쌓아놓는 현상이 재연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유럽에선 경제 봉쇄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유럽 시장을 전망하려면 꼭 세분해서 살펴봐야 합니다. 개별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독일 경제는 상당 부분 중국으로의 수출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중국 경기가 완연한 회복세이기 때문에 유럽 국가 중 독일 상황은 좋은 편입니다. 문제는 이탈리아입니다. 가장 고령화된 사회 중 한 곳이어서 코로나19에 취약합니다. 부채도 많아 회복이 상대적으로 더딜 수 있습니다.”

▷중국 경제에 대해선 상당히 낙관하시는군요.

“유럽 역시 비슷하지만 중국은 중앙집권화된 공중보건 체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백신을 출시하고 또 보급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중국은 미국 및 유럽과 달리 막대한 규모의 재정·통화정책을 쓰지 않고도 경제를 먼저 재가동했습니다.”

▷미국 정부가 중국에 강경책을 쏟아낼 것이란 예상이 나옵니다.

“미·중 간 무역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지식재산권과 안보, 인권을 놓고선 무역보다 더 심각한 갈등을 빚을 수 있지요. 대신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뒤엔 접근법이 달라질 겁니다. 트럼프처럼 홀로 중국을 상대하기보다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like-minded) 국가들과 힘을 합쳐 대응할 것이기 때문이죠. 일종의 연합전선을 결성해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겁니다.”

▷그런 방식으로 중국을 결국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때와 다른 방식의 접근법은 꼭 필요합니다. 우리는 중국의 경제 발전이 중국을 더 개방적으로 만들고 민주적인 정치체제로 나아가도록 유도하지 못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습니다. 미국이 떠안고 있는 아주 어려운 숙제이죠. 중국에 대해선 좀 더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전략을 짤 필요가 있습니다. 또 양측 갈등으로 이익을 얻는 국가가 생길 거라고도 믿지 않습니다. 반사이익을 기대해선 안 됩니다.”

▷중국을 제외한 나머지 신흥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는지요.

“유럽도 그렇지만 신흥시장을 하나의 틀로 묶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국가별로 세분해서 바라봐야 하지요. 일단 중국과 이웃한 국가들의 전망은 밝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터키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른 대륙의 신흥국은 훨씬 심각한 재정난에 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글로벌 경제가 K자형 양극화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어떤 해법이 있을까요.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부익부 빈익빈과 같은 불평등은 항상 큰 문제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 후 이런 불평등이 심화했지요. 예컨대 부자 나라인 미국에서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하는 취학 연령층이 상당히 많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단기적인 개선책은 증세 및 소득재분배입니다. 부유층을 대상으로 세금을 더 매기고, 저소득층엔 더 많이 주는 공공보조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것이죠. 하지만 말 그대로 단기 처방일 뿐입니다. 지속가능한 해법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코로나 이후’를 준비하도록 해주는 겁니다. 필요한 기술을 제공해 스스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죠. 즉 교육과 훈련입니다. 대학 등 고등교육 기회를 넓히고 직업훈련제도를 강화하는 게 훨씬 나은 대안입니다. 다만 이런 프로그램을 구축하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걸 염두에 둬야 합니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거의 끝나갑니다. 대외정책에 대해 평가해주십시오.

“잘한 걸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실망스럽습니다. 외교정책은 균형에 맞지 않았고 실수 역시 많았지요. 성과로 내세우는 모로코-이스라엘 간 관계 정상화만 해도 그렇습니다. 양국 합의를 위해 미국은 논란이 돼온 모로코의 서부 사하라 주권을 인정했습니다(모로코는 1979년 국제사회 동의 없이 서부 사하라를 병합했다.). 이 지역에 새로운 분쟁 위험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안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이죠. 또 다른 예는 스위스와 베트남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겁니다. 국제협력을 해치고 미국 경제를 약화시킬 뿐입니다. 바이든 정부에 커다란 짐을 지웠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집권한 뒤 집중 추진해야 할 정책은 무엇입니까.

“바이든 당선인은 취임 직후 파리기후협정에 복귀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또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조직 개혁에 나설 겁니다. 규칙에 기반한 무역체계를 다시 만드는 겁니다. 트럼프 정부가 중국에 매긴 고율의 보복 관세를 즉각 포기하진 않을 겁니다. 좀 더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협상을 통해 중국 시장에 대한 접근성을 확대하고, 지식재산권 탈취를 막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보복 관세 중 일부를 낮춰주는 대가로 말이죠.”

▷주요 20개국(G20)은 코로나19 타격이 큰 73개 저소득 국가를 대상으로 채무상환 유예조치(DSI)를 취했습니다. 여기에 한계가 많다는 기고를 최근 했는데요.

“부유한 국가들이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이자 상환 시기를 미뤄줬지만 민간 금융회사를 끌어들일 방법을 강구하지 않았습니다. 민간 채무는 그대로이죠. 각 정부에 갚을 돈을 민간기업에 먼저 갚을 수 있습니다. 또 브라질 터키 남아공 등 ‘중견’ 채무국을 빼놓고 최빈국들과만 협상했습니다.”

■ 아이컨그린 교수는…
세계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인 선정
배리 아이컨그린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캠퍼스(UC버클리)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적인 통화·금융시스템 전문가로 꼽힌다. 1987년부터 UC버클리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통화정책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일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은 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자문교수위원장, 미국경제연구소(NBER) 연구위원,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다.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가 2011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지식인 100인’으로 선정했다.

그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 경제학자이기도 하다. 지금도 UC버클리 한국학연구소 전임교수를 겸직하고 있다. 《한국 경제: 기적의 역사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로》를 공동 집필했다.

△UC산타크루즈 경제학 학사 △예일대 경제학 석·박사 △UC버클리 교수 △국제슘페터학회 슘페터상(2010년) △미국경제사학회 의장

뉴욕=조재길 특파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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