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추기자]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2018년 새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년 전 비트코인 광풍이 난데없이 전 세계에 휘몰아쳤다. 누구인지 정체도 모르고 통성명도 하지 않은 채 일단 돈을 태웠다. 너도나도 사촌도 팔촌도 비트코인에 투자했는 얘기가 들려왔고 수백 배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낭설이 판쳤다. 한발 빨랐던 친구는 이미 몇 달 전 돈을 태워 벌써 재미를 봤다고 말했다.2017년 말에 그냥 스치듯 안녕이었던 비트코인은 해를 넘기자 인연처럼 다가왔다. 장이 열리고 닫히는 시간이 정해진 주식과는 차원이 달랐다.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코인버스는 잠깐 멈춤이 사망선고인 것처럼 달려갔다. 주식 투자조차 해보지 않았던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은 하나의 마약과 같았다. 필자 역시 난생처음 자본시장에 발을 들일 기회를 비트코인을 통해 2018년 접했다. 바로 이더리움을 통해서다. 비트코인은 뭔가 너무 모범생 같고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좀 나이스해 보이는 이더리움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당시 광풍이 불자 비트코인 거래소는 일제히 신규 가입자를 막고 자금 유입을 차단했다. 이성적 판단이 마비된 투기장처럼 변모된 비트코인 장을 정화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안달이 난 청춘들은 전전긍긍했다. 넣기만 하면 돈을 번다는데 넣을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정말 당시에는 안 하면 눈앞에 있는 기회를 놓친 사람으로, 가장 힙한 대화 주제를 전혀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귀 얇은 필자도 방법 모색에 나섰다. 하필 당시는 부동산이 본격적인 상승기를 맞이한 시기였다. 젊은 층은 당시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박탈감이 심각했다. 집값은 하룻밤 새 수천만 원, 수억 원이 오르고 있고 내 자본은 여전히 제자리다 보니 비트코인을 통해 시드머니를 만들어야겠다는 `종잣돈 마련론`이 펼쳐졌다. 지금이라도 비트코인으로 자본을 마련해놓아야 내 집도 마련하고 인생을 역전할 수 있을 것이란 부추김이 여기저기서 이뤄졌다. 다들 이성을 잃고 `가즈아` 소리를 외친 시점이 딱 요맘때였다.
비트코인은 2009년 1월 3일 도입됐다. 개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카모토의 정체가 누구인지 역시 당시에는 큰 화제거리였다.
가상화폐의 대표 격인 비트코인은 1월 5일 기준 총 1859만개가 발행됐다. 비트코인은 기존 화폐와 달리 정부나 중앙은행, 금융기관의 개입 없이 개인 간 안전한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한다. 발행량이 한정돼 있어 가격의 변동성이 크고 실물자산으로서 가치가 있느냐를 놓고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았다.
2018년 1월 당시 가격은 단위당 1800만원을 오르내렸다. 초기 대비 수천 배 이상 가격이 오른 상태였지만 2017년 말부터 2018년 초는 이러한 비트코인 부흥의 원년으로 평가된다. 당시 비트코인을 비롯해 다양한 종류의 가상화폐가 등장하며 해당 코인의 가치적정성과 신뢰성 문제가 곳곳에서 제기됐다. 뉴스 또한 끊이지 않았다. 비트코인 투자로 수억 원을 손실했다는 사람들, 결혼 자금이나 주택 구입 자금을 비트코인에 투입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속출했다. 인기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해당 내용을 다루며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 물론 일부 투자 성공자는 60억원을 벌었다는 둥, 빌딩을 여러 채 샀다는 둥 뻔한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냈지만 상당수가 투자에 실패하며 광풍의 막이 내려졌다.
당시 유행어인 `가즈아`와 `존버`는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최민식 배우의 영화 속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나온 `가즈아`는 앞뒤 따지지 말고 무조건 사서 이득을 보자는 임전무퇴 정신을 함축한다. `존버`는 오래 버티면 결국 웃을 일이 올 테니 가격 하락에도 걱정하지 말고 버텨야 한다는 하나의 신앙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2018년 봄, 이러한 비트코인의 열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대부분은 가치가 바닥으로 떨어졌고 일부 코인은 상장폐지가 되는 등 진짜 실물 없는 가상화폐가 종이 쪼가리보다 못한 존재가 됐다.
투자액을 정확히 밝히기 어렵지만 필자도 당시 친구 따라 강남 가겠단 큰 꿈을 품고 비트코인에 돈 1000만원가량을 투자했다. 그 돈은 2018년 말 -88% 수익률을 기록했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은 어차피 이제 반등이 없다며 수십만 원이라도 건지겠다는 마음으로 환전해 나갔다. 누구는 비트코인 이야기가 나오는 곳은 쳐다보기도 싫다며 고개를 돌렸고 모조리 팔고 떠났다.
10분의 1 규모로 쪼그라든 숫자를 보니 필자 역시 현실감이 잘 들지 않았다. 한 번도 만져보지 못한 사이버머니 같은 그 돈은 허탈함과 박탈감을 주며 쓰라린 투자 실패의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굳이 처분하지는 않았다. 혹시 모른다는 기대감과 진짜 50년 후에 열어보자는 오기로 그냥 잊은 채 살기로 했다.
진짜 투자 고수는 매일 주식창을, 코인창을 쳐다보지 않는다 했다. 한번 투자한 뒤 몇 년을 묵히고 나서 꺼냈을 때 구수한 장이 담기듯 그렇게 꺼내 보는 것이 진짜 투자 고수의 길이라고 했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바쁘게 살아갔다.
그리고 2020년이 왔다. 2020년은 코로나19로 시작해 코로나19로 끝난 해다. 코로나19발 경제위기로 전 세계가 비상 깜빡이를 켜고 응급 조치에 나서면서 의외의 변수가 발생했다. 바로 제로금리 시대의 개막과 재정부양 정책에서 기인된 막대한 유동성 공급이 전 세계에 이뤄진 것이다. 물론 비트코인 자체도 그 3년이란 시간 동안 스스로 발전하고 다양한 진화를 거듭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짚불에 불붙듯이 불을 붙인 게 바로 코로나19 바이러스다. 이걸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정말 예상치 못한 변수와 우연이 이어져 만든 새로운 상황이었다. 2020년 초만 해도 조용하던 비트코인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2020년 1월 비트코인 가격은 단위당 1000만원까지 떨어졌다. 전고점 대비 절반 수준이였다. 하지만 2020년 모든 게 달라졌다. 회귀에 나선 연어처럼 펄떡이던 비트코인은 결국 지난해 말 미친 듯이 폭등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만 해도 비트코인 가격은 1200만원 선이었다. 여전히 1500만원도 넘지 못하며 비실비실하던 비트코인은 10월 1500만원 선을 넘으며 본격 회복에 나섰다. 이후 11월 2000만원 선을 돌파하며 전고점을 깨트리고 신고점을 기록했다. 기적의 일이었다. 한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12월 미친 듯이 올라가던 비트코인은 결국 해를 넘겨 현재 4400만원까지 치솟았다. 입이 쩍 벌어지는 결과다. 이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느냐를 놓고 여기저기서 해석이 분분하다. 하지만 어떤 숫자와 데이터를 가져온다 해도 이를 이성적으로 분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존버는 승리했다.
사실 필자는 비트코인이 아닌 이더리움에만 투자를 올인했다. 이더리움 역시 2018년 당시 단위당 250만원 안팎까지 상승한 뒤 나락으로 떨어지며 두 자리 숫자를 보였다. 현재 이더리움 시세는 130만원 안팎이다. 전고점 대비 절반 수준이지만, 워낙 많이 떨어진지라 상당 부분 회복이 이뤄진 상태다. 그 결과 필자의 수익률 역시 -88%에서 현재 -13% 안팎까지 회복했다. 아직 100만여 원 손실이 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사실상 수백만 원을 번 기분이다. 사실 3년간 투입된 돈과 현재 가격을 생각하면 정말 철저하게 실패한 투자지만, 그래도 존버 정신을 믿었고 비트코인이 이에 답했다는 것으로도 만족한다.
여전히 아직도 철없는 초보 투자자들은 팔랑귀를 갖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리고 있다. 현재 부동산, 주식, 비트코인 어느 하나 주춤한 투자처가 없다. 초보 투자자들의 조급함 역시 커지고 있다. 이미 실패를 경험해본 초보 투자자로서 조언을 조심스레 해본다면 이런 상승장에 탑승하는 것은 정말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인 네 명끼리 구성된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이 있다. 이 중 세 명은 코인버스에 탑승했지만 그 당시 바쁘다는 이유로 한 명은 코인판에 발조차 들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세 명은 수년간 어쨌든 금전적·정신적 손실을 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얻지도 않고, 잃은 것도 없는 그 친구만이 가장 많은 이득을 낸 것 같다. 가끔 뜨거울 때는 아예 손을 대지 않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추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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